▲ 최나영 기자
“보건의료노조의 지난 20년간 노사관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26일 오후 보건의료노조와 민주노총·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서울 여의도 CCMM빌딩 12층 컨벤션홀에서 주최한 ‘보건의료 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산별교섭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가 1998년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여러 성과를 남겼지만, 상대적으로 단체교섭은 미흡했다는 평가다. 이주호 실장은 “보건의료 분야에는 기업이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늘어나고 있다”며 “창립 20주년이 되는 올해는 다시 한 번 노조의 산별교섭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20년, 양적·질적 성장

보건의료노조는 98년 국내 최초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노조는 의료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 운동’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 해결 운동’을 꾸준히 펼쳤다. 보건의료 노사는 2007년과 지난해 교섭에서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는 합의다. 지난해에는 노사정이 함께 95개 의료기관에서 신규인력 2천227명을 충원하고 비정규직 1만99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조합원은 꾸준하게 늘었다. 98년 출범 당시 94개였던 지부는 지난해 172개로, 조합원은 2만5천451명에서 5만7천385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성과에 비해 2004년 시작한 보건의료 분야 산별교섭은 매년 약화했다. 2009년 이후 국립대·사립대병원 사용자들이 교섭에 불참했다. 2010년부터는 지방의료원·공공·특수목적병원 사용자들만 산별교섭에 참여했다.

이주호 실장은 “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노동조건과 주요 의제를 선도하고 기준을 제시해 왔다”면서도 “눈치 보기 교섭문화를 극복하고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를 정립했지만 전체 병원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노동시간 개선·공짜 잔업 없애기·인력확충 등 개별 기업 노사가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많다”며 “2018년 산별교섭을 얼마나 내실 있게 하고 있는지 많은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용자단체 조직률 높을수록 단협 적용률 높아”

사용자들의 산별교섭 참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주호 실장은 “사용자 단체가 해산된 이후 병원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참여하기를 꺼려하는데, 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자들이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공공의료기관 사용자들부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사례를 볼 때 사용자단체 조직률이 높을수록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았다”며 “한국에서도 사용자단체들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산별교섭에) 사용자들을 참여하게 할 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이사장은 “보건의료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자유경쟁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며 “자율적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모든 것이 수가를 비롯한 건강보험 정책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본임금 인상률 등을 노사정이 같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측은 노조가 꾸준하게 요구했던 산별교섭 법제화와 관련한 의견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사관계 법·제도 전문위원회라는 전문가 논의체를 구성해서 산별교섭 활성화를 포함한 다양한 집단적 노사관계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산별교섭 제도화 주장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제도적으로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지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법 체계에서 특정 교섭을 강제하는 방식이 가능한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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