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보호대상을 넓히고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물론 원청과 발주자(건설)에게도 산재예방 책임을 부담시켰다. 법 사각지대에 있던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권에 넣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전부개정안 목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경하고도 “근로기준법상 정의를 그대로 두고 노동자 의무만 나열해 개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더욱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6년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담긴 '노동자 자료청구권'도 제외됐다. 정부는 공청회와 간담회를 열어 다음달 21일까지 전부개정안에 대한 전문가와 노사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일하는 사람' 개념 도입 혁신적이지만…

이달 9일 정부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5일 안전보건 전문가들과 노동계는 “보호범위를 확대하고 사업주 책임과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진전된 안”이라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자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일터 조성’은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 유지·증진"이라는 법의 목적에서 근로자를 ‘일하는 사람’으로 변경했다.

산재 사망사고 처벌도 강화했다.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자는 징역 1년 이상 7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 1억원 이하를 10억원 이하로 가중했다.

하지만 “위험에 노출되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한다”는 법 개정취지와 달리 “보호 대상에서 모든 일하는 사람이 담기지 못한 데다, 일하는 사람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법의 목적에 ‘일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것은 혁신적”이라면서도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정의가 빠진 채 의무만 나열돼 있다”고 우려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보호받지 못한 특수고용 노동자와 새롭게 대두된 공유경제 노동자·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 등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도록 근거를 마련했다”면서도 “법의 목적은 ‘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정의는 그대로 둠으로써 여전히 근기법상 근로자로 그 보호대상을 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자 정의를 취업자 또는 종사자 개념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원은 작업환경측정결과 공개하라는데…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사업주는 노동자의 긴급대피가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이행됐다면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작성해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고, 구성성분 명칭·함유량을 비공개하려면 노동부 장관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화학물질을 다루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개별 노동자에게는 물질안전보건자료 청구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김재광 소장은 “노동자 긴급대피 조항의 ‘급박한 위험’은 그 해석이 매우 협소하다”며 “최소한 급박한 위험과 더불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조치가 미비할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김영주 장관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발의에 참여한 화학물질의 영업비밀 남용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담긴 노동자 자료청구권이 전부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최근 법원이 삼성전자 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상황에서 정부가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대한 노동자 청구권을 부여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사람으로 보호대상 확대해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 특수고용 노동자 중 사용자 종속성이 강한 직종과 배달앱을 이용하는 배달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가 강화된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도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최명선 실장은 “원청 책임범위 확대나 발주처 책임강화 등은 진전된 내용이지만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를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자’로 제한했다”며 “건설현장의 기형적인 임대차 계약형태에 따른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발주처 책임강화도 건설공사로 한정해 화학산단·제철소·발전소 하청 산재에 대한 근본대책이 누락됐다”고 비판했다.

김재광 소장은 “보호대상을 ‘일하는 사람’으로 전면 확대해야 한다”며 “신체건강과 동시에 정신건강 보호예방도 하나의 영역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조치 규정에 ‘업무수행이나 이와 관련한 인적·물적 환경에 따른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할 필요가 있다”며 “일터 괴롭힘을 포함한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노동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기홍 소장은 “노동자 안전보건에 대한 철학과 목적이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며 “부족하지만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향후 부족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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