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꿈을 이루기 위해 시급한 게 돈이었거든요. 이 장학금으로 제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됐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훤칠한 키에 생머리를 한 선소연(19)씨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전태일재단(이사장 이수호)의 ‘2018 전태일장학금’을 받고서다. 주홍색 니트를 입고 온 선씨의 꿈은 패션모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모델 꿈을 꿨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카데미 등록은 언감생심이었다. 독학으로 모델 꿈을 키우던 그에게 장학금 100만원이 소중한 이유다. 선씨는 “때마침 장학금을 받아서 아카데미에 다닐 수 있게 됐다”며 “부모님께서 봉제 일을 하신다. 디자이너들의 옷이 탄생하기까지 미싱사들의 손을 거쳐야 하는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사회운동가·봉제노동자 자녀와 이주노동자 지원

지난 2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종로중앙새마을금고 본점 4층 강당에서 전태일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전태일 장학사업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풀빵나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전태일 열사가 차비를 아껴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줬던 마음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전태일 열사의 친구이자 삼동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최종인 청우회(청계피복노조 출신자 친목단체) 회장이 장학금 명목으로 2015년 1억원을 재단에 기탁했다. 한 달에 80만원씩 10년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보내온 돈을 보태 2016년부터 장학금을 줬다.

올해는 13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사회운동가·청계피복노조 조합원·창신동 봉제노동자 자녀와 이주노동자가 받았다. 대학생에게는 200만원, 고등학생에게는 100만원을 지급했다. 특별장학금은 200만원 지급했다. 차형근 재단 기획국장은 “가구 소득이 낮은 이들을 중심으로 선발했는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에도 장학금을 수여했다”며 “한국에서 공부하며 이주노동자단체에서 활동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장학금을 준 것도 뜻깊다”고 말했다.

“베품 배운 만큼 나누며 살 겁니다”

전태일 열사 얼굴이 담긴 장학증서를 받은 노동자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장학금을 받으러 제주도에서 온 이소현(20)씨는 이번 장학금으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사실 등록금이 부담돼 지역국립대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장학금을 받아서 서울로 올라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소감을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국문과에 진학할 예정이라는 이씨는 “작가와 교사가 꿈”이라며 “열심히 배워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같은날 알바노조 위원장에 당선한 이가현(26)씨도 장학금을 받았다. 이씨는 “알바노조 활동을 하느라 휴학을 많이 해서 또 휴학하면 제적된다”며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막내 동생까지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때문에 막막했는데 장학금으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노동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는데, 이런 꿈을 꿀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는 것 같다”며 “베품을 배운 만큼 앞으로 많은 것들을 나누면서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는 김광수(19)씨는 “집에 책상만 있고 의자가 없어 불편했는데, 장학금으로 의자도 사고 필요한 교재나 노트도 마련할 것”이라며 “전태일 열사가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학업을 놓지 않았던 만큼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단은 시상식 뒤 총회를 열었다. 재단은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하고,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하는 2020년에 맞춰 사업 기틀을 마련하자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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