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국지엠 사태 해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해법을 토론하려면 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지엠 본사의 속내부터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엠은 지난해 말부터 투자자 보고서에서 한국 철수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지엠은 보고서에 2019년까지 지엠인터내셔널(GMI)이 흑자로 전환하지 않으면 과감한 결정(Bold Decision)을 취할 것이라고 써 놓았는데 여기서 지엠인터내셔널은 한국을 의미하고, 과감한 결정이란 유럽·러시아·호주·남아공과 같은 결정을 말하는 것으로 철수를 뜻한다.

그렇다면 흑자전환은 무슨 의미일까. 전문연구기관들에 의해 밝혀졌듯 한국지엠 적자는 본사가 생산물량을 배정하지 않아 발생한 가동률 저하, 과도한 연구개발비 분담, 본사에 대한 저가 수출이 핵심 원인이다. 연 6천억원의 적자 대부분이 본사 정책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본사 정책 전환 없이는 흑자전환도 어렵다. 연 1조5천억원 정도인 인건비는 10%를 줄여도 1천500억원, 심지어 20%를 줄여도 적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구조조정으로 생산비용을 낮춰도 본사가 신차 배정을 이유로 한국의 연구개발비 분담을 높이거나, 신차의 수출단가를 턱없이 낮추면 한국지엠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다시 커진다.

요컨대 흑자전환 여부는 한국지엠의 노력이 아니라 본사의 정책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금을 주고 노조가 더 희생하면 조금 더 공장을 가동하다가 지원금과 노조 양보가 끝나면 그때부터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지엠은 지엠에게 말 그대로 꽃놀이패다.

물론 지엠이 한국 철수를 결정하더라도 당장 전 공장이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오펠을 매각한 지엠은 중소형차 경쟁력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한국의 중소형차 생산능력과 개발·디자인 능력은 지엠에게 앞으로 몇 년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길어야 3~5년 정도다. 지엠은 2020년까지 픽업트럭·크로스오버·스포츠유틸리티 등 수익성이 높은 대형차와 전기차·자율주행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구조조정을 핵심 사업계획으로 가지고 있다. 이 계획에는 한국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당시 전략은 소형차부터 픽업트럭까지 모든 차종을 연 1천만대 생산하는 ‘공룡’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런 전략에 따라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맡아 지엠 총생산량의 20%를 책임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파산 이후 2013년부터 지엠은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수익성과 미래 기술 중심으로 사업 전반을 조정했고, 이때부터 한국지엠은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지엠 본사의 이런 속내를 감안할 때 한국 시민은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가장 속 시원한 답은 ‘먹튀’ 지엠에게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 혈세를 지엠에게 내주는 것은 납세자 입장에서 속이 쓰리다. 그런데 이런 대안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지엠이 어떤 지적재산권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연 6천억원 가까운 연구개발비를 썼지만 중요한 지적재산권이 하나도 없다. 지엠이 떠나는 순간 한국지엠은 지엠에게 고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것도 지엠이 허락하는 차에 한해서만 생산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누가 한국지엠을 인수하든, 지엠이 철수하고 나면 한국지엠은 특별한 다른 계획이 없는 한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한국지엠을 아예 청산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용불안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지엠을 정부가 인수해 미래형 자동차 개발과 생산을 위한 국유기업으로 키우자는 제안도 한다. 90만대 생산능력과 30만명의 고용이 걸린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안치고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이런 시도를 한다고 알려진 호주는 자동차 전후방 산업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고, 지엠이 철수한 공장도 작은 규모다. 호주식 해법은 일부 공장에는 유용하겠지만 한국지엠에 적용할 해법은 되기 어렵다.

정부는 자금지원 대가로 경영투명성과 장기 발전전망을 교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니 국부유출을 감독할 권한을 달라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요구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지엠 사업계획에는 한국지엠의 자리가 없다. 정부가 장기 발전전망을 요구한다고 그것이 갑자기 나올 리 없다는 얘기다. 둘째, 지엠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협상 상대가 아니다. 지엠은 2013년에도 한국에 8조원 투자와 장기 발전전망을 약속했다. 그러나 투자는 고사하고 한국지엠은 빈털터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지원을 한다면, 협상은 하나 마나 한 말들로 채워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지엠 상황은 진퇴양난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 또는 차악은 정부가 한국지엠을 지원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주체를 기업 내부에서 키우는 방법뿐이다. 앞으로 몇 년간 시간을 벌면서 정부 지원금이 한국지엠의 미래를 위한 투자금이 되도록 만들고, 지엠을 견제하면서 스스로의 포스트 지엠 전략을 찾아낼 주체 말이다. 한국지엠에는 사무직과 생산직이 함께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있어 내부 경영을 감시할 잠재력이 있다. 노조가 마음만 먹으면 내부에서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한국지엠 노조는 지난 수년간 위기가 눈앞에서 진행 중인데도 실리적 임금·단체협상에만 집중했다. 몇 년 전에는 취업비리에 연루되는 등 그다지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지원금을 지엠으로부터 지켜 내고 기업 내부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조합뿐이다.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이 단기적 실리가 아니라 시민 혈세를 지키는 사회적인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하겠다고 밝히고 진정성 있게 혁신을 시도해 봤으면 한다. 노동조합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한다면, 정부 지원도 그만큼 가치를 상실한다. 오늘의 사태가 몇 년 후 그대로 다시 발발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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