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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재피해자 자체 보상, 산재보험 변화 촉매제 돼야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벌써 10년이 지났다.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암·희귀질환 등에 걸렸고, 직업병으로 인정하라는 산업재해보상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94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했다. 행정소송을 통해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까지 포함해 노동자 24명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한 질병은 반도체 질병으로 알려진 백혈병을 비롯해 뇌종양·난소암 등 암과 다발성경화증·루게릭병·파킨슨병 등 희귀질환이 다수를 이룬다. 이와 같은 암이나 희귀질환이 현재의 산재보험 체계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질병을 일으키는 동안 알려진 원인(화학물질이나 방사선)에 노출되고, 일정 기간(잠복기)이 지난 이후 해당 물질이 질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산업에 비해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종류와 양이 국내 최대 수준이지만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됐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화학물질을 안다고 해도 발생한 희귀질환과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는 아직까지 매우 부족하다. 그동안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에서 한 대규모 역학연구에서도 혈액암을 비롯한 일부 질환과의 연관성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한 여러 피해 노동자들의 요구와 반올림 등 여러 사회단체의 노력으로 일부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한 해결에 이르지 못한 문제도 있고, 기업마다 보상을 하는 질병의 종류·지원 금액·지원 대상 등에서 차이는 있지만, 큰 방향에서 보자면 비슷한 수준이다. 혈액암·뇌종양뿐 아니라 폐암·방광암·난소암·유방암 등 지원 대상 암종을 최대한 늘리고, 희귀질환에 대한 지원도 포함시켰다. 아직까지 역학연구를 통해 반도체 산업과의 관련성이 확인된 질병이 일부 질병에 한정된 것에 비하면 보상 범위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또한 발생빈도가 매우 낮아 역학연구로 확인하기 어려운 희귀질환까지 포함했고, 일부 사업장이 자연유산에 대한 보상을 실시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사업장의 자체 보상지원에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지원·보상 대상에 포함되는지, 일부 기업이나 업종이 아니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비교적 폭넓은 보상 지원이 될 수는 없는지, 이를 위해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다.

일부 반도체 사업장의 보상지원 체계는 다음의 세 가지 확장성을 가질 수 있어야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의 지원보상 체계는 일부 사업장 단위가 아닌 업종 전체에서 운영하는 체계로 변화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하청 사업장을 가지고 있다. 회사 내에서 상시로 일하는 하청노동자뿐 아니라 반도체 사업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노동자도 많다. 또한 이러한 하청노동자들의 위험이 더 클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보상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단위 사업장이 아닌 업종별 지원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산재보험을 대표로 하는 노동자 피해보상 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반도체 일부 사업장에서 하고 있는 지원·보상은 보다 폭넓은 대상에게, 근무 이력만으로 관련성을 인정하는 포괄적 책임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지원·보상 모델이 산재보험 변화에 중요한 자극이 돼야 한다. 이러한 확장성이 있어야 일부 사업장 지원·보상 모델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셋째, 보상뿐 아니라 예방으로 우리 관심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 더는 피해 노동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현재 질병이 발생한 노동자들은 최근의 위험요인 노출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10년 전 노출이 현재 질병 발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위험에 노출을 줄이는 것이 10년 뒤 질병 발생을 줄이는 것이라면, 지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한다. 일부 사업장에서 유방암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는 야간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질병 발생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감시체계와 코호트 구축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예방 노력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경험이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형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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