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현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상판결 : 대전고등법원 2018.2.1. 선고 2017누10874

1. 사건의 개요

이아무개씨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근무 중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4년 8월1일 사망했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망인이 근무하던 기간 동안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를 신청했으나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해당 사업장 관할 지청)은 “위 정보가 정보공개법상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원고는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제기했지만 핵심정보는 여전히 비공개된 채 일부 자료만 공개됐고, 원고는 다시 이에 불복해 2016년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 또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1심 법원(대전지법 2016구합100927)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내용을 통해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종류·사용량·구성성분 관련 정보 등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정보는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며 이러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이유 등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기재된 근로자명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위 판결은 피고가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2. 판결의 요지

(1)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법인 등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정보공개법 9조1항7호 본문).

이 사건 중 특히 쟁점이 된 부분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중 측정위치도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위 측정위치도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개략적인 도면 위에 유해인자 등의 측정위치를 표시한 것에 불과한 바 그 자체로는 정보공개법 9조1항7호 소정의 ‘법인 등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이 사건 측정위치도를 다른 정보들과 함께 대조해 볼 경우에는 해당 유해인자가 공장의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 측정됐는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봤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공정 간 배열, 각 라인에 배치한 설비의 기종 및 보유대수, 생산능력, 반도체 후공정 자동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 효과 등의 정보’ ‘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사용량·구성성분 등의 정보’ 등까지 알려지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에 반해 이 사건 측정위치도가 있어야만 원고는 해당 사업장 내의 어느 곳에서 어떠한 유해인자들이 노출가능하고 실제로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바 이는 근로자의 생명·신체·보건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판시하면서 위 정보는 정보공개법 9조1항7호의 비공개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다(정보공개법 9조1항7호 가목).

아울러 재판부는 작업측정결과보고서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정보에 해당할 경우의 가정적 판단도 했다. 즉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통해 해당 작업장의 어느 공정 및 어느 지점에서 유해화학 물질 등의 유해인자가 검출돼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망인을 비롯해 해당 작업장의 전현직 근로자들의 안전 및 보건권의 보장, 나아가 해당 작업장이 위치하고 있는 인근지역 주민들 생명·신체 건강 등의 가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설시하면서 위 정보는 정보공개법 9조1항7호 가목의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이 사건의 의미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공장 내부의 유해물질 노출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따라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는 이 보고서가 자신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는 이 보고서 공개를 거부해 왔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삼성전자와 노동부·안전보건공단 등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보고서 전부 혹은 일부의 제출을 거부해 왔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인 고 김기철씨 소송에서 법원은 고인이 근무했던 사업장(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전문을 제출하라고 문서제출 명령을 발했으나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이 2017년 10월 보고서의 핵심 내용(측정 대상 공정)이 모두 삭제된 일부만을 제출한 예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본 판결은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공개돼야 함을 명확히 한 첫 사례다. 본 판결이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의의를 설시하고 공개의 정당성과 범위에 대해 세부적인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본 판결은 향후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작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공개 관행과 비공개 여부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전자 온양공장 작업환경은 위해 발생의 추상적·주관적 발생 가능성만이 존재한다는 취지의 피고 주장을 배척한 판결문의 해당 설시 부분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을 포함해 반도체 사업장의 경우 화학제품 사용으로 인해 사업장 내의 공기 중으로 황산·벤젠·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의 유해인자·방사선 등이 누출될 수 있고, 그로 인해 근로자들의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됨은 그와 관련된 최근의 보고서·논문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엘시디(LCD) 생산공정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나 유족들이 직업병 등을 이유로 수십 건의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하고, 관련 소송을 제기했던 사실도 이미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고 설시했다. 이는 반도체 사업장의 유해성 주장이 단순한 ‘가능성’ 혹은 ‘가설’에 그치지 않음을 확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가 해당 물질과 안전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면 질병과 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작업 중 화재나 폭발·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인근 주민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정보공개법이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삼성전자는 이번 판결의 취지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등 사업장 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알권리 보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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