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동에 기초한 헌법개정 내용과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무금융노조
노동계가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 국면에 노동계 안을 제시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사무금융노조는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동에 기초한 헌법개정 내용과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양대 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을 내놓기 전에 노동계 목소리를 담은 헌법개정 청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각자 준비한 개헌안을 중심으로 실무협의를 거쳐 공동개헌안을 마련한다. 이달 중 단일 개헌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불로소득 통제·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민주노총은 지난해 하반기 지도부를 교체하면서 개헌 국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민주노총 개헌 요구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토론회 발제에서 "근대헌법은 국민·시민·노동자 기본권리를 담고 있지만 1987년 헌법에 노동자는 제외돼 있다"며 "직선제 같은 형식적인 민주화 제도, 표현의 자유 같은 평등권은 보장하고 있지만 노동 3권은 보장하지 않고 있고 노동자는 여전히 근로자로 불린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동 3권 온전한 보장 △일할 권리 보장·비정규직 사유제한·대기업 직접고용 책임 명시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영리화 금지 △적정한 노동소득분배율 유지의무·노동자 이익균점권 복원 △불로소득 통제·토지공개념 명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6대 요구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로소득 통제·토지공개념 명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는 최근 활동을 종료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마련한 개헌안에 없는 내용이다.

신인수 변호사는 "제헌헌법에도 운수·통신 같은 공공성을 가진 기업을 국영이나 공영으로 하도록 명시했던 만큼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를 신설하는 것은 독특하거나 과도한 주장이 아니다"며 "자산 소유에 기초한 불로소득을 규제하고 민심이 그대로 국회 의석에 반영될 수 있도록 비례성이 구현되는 선거제도 원칙을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만들려면 노동자 존엄 인정해야"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 개헌안을 토대로 노동헌법 개헌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며 "87년 헌법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삶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노동 3권 보장수준도 현격하게 열악하며, 자본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노동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 전문에 노동존중 가치를 명시하고 '근로' '근로자' 같은 호칭을 '노동' '노동자'로 정상화해야 한다"며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보장, 노동조건 노사대등 공동결정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황승흠 국민대 교수(법학)는 "노동 3권을 헌법에 명시한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노동자가 손님이라는, 즉 노동 3권마저 없으면 죽게 되기 때문에 제헌헌법에 포함한 것"이라며 "이승만과 같은 우파세력이 노동 3권이 포함된 제헌헌법을 만들었는데 이후 개헌이 이뤄질 때마다 노동권 내용은 지속적으로 후퇴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가는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단결권·교섭권·행동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억지로라도 노동 3권을 부여해야지 노동과 자본이 대등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논설위원은 "헌법상 기본권 주체를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근로는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며 "노동 3권 행사와 관련해 삽입된 목적 제한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근로조건 향상이 아닌 목적에서의 노동 3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정리해고 반대파업과 민영화 반대파업은 불법으로 낙인찍힌다.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장은 "촛불항쟁 이전에 형성된 의회권력이 과연 개헌에 수긍할 것인지, 만약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사회는 정승일 노조 정책연구소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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