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승리의 환호는 없다. 지난 8일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이 있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에 관해서였다. 서울고등법원(제1민사부)은 이날 하이디스테크놀로지(주)의 정리해고 사건에 관해 강제조정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15년 3월31일 1차 정리해고 사건(원고 이상목 등 58명), 2016년 1월31일 2차 정리해고 사건(원고 우부기 등 15명) 모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2차 사건 해고자들까지 참가해서 조정절차가 진행됐다. 법원 결정은 노사 양측이 송달받은 후 이의포기로 신속히 확정됐다. 이로써 조정결정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됐다. 판결에서 청구가 인용됐으면 원고들은 환호했겠지만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하이디스 해고자들은 법원의 결정문을 읽으면서 하이디스 공장에 돌아가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을 다시 설립해서 해고 전처럼 일할 수 있게 해 주지 않는 한 무엇도 하이디스 정리해고자들을 기쁘게 할 수 없었다. 하이디스는 생산부문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공장을 폐쇄하고서 그 생산시설 일체를 철거해 버린 상태였다. 2015년 1월7일 공장폐쇄가 있기 전으로 되돌아가려는 하이디스 해고자들의 꿈만은 철거되지 않은 채 투쟁을 외쳐 왔건만 실현될 수 없이 되고 말았다. 법원 결정문은 더는 꿈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해고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환호는 없었다. 아무리 텅 빈 공장 건물마저 하이닉스에 매각됐다고 하지만, 이천의 하이디스 공장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노동자를 배신하는 현실은 비가(悲歌)가 울려 퍼져야 마땅했다.

2. 하이디스는 1989년 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설립돼 기업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2002년 분사 후 중국 비오이(BOE)로 매각됐다. 중국 비오이에 인수된 이후 기술유출·고의부도 등의 문제가 있었고, 최신 5세대 공정의 중국 공장 설립에 투자해 운영했으나 하이디스 이천공장은 한 차례의 신규 설비투자 없이 2015년 1월17일 폐쇄 당시까지도 2~3세대의 낙후된 설비로 운영되고 있었다. 2008년 대만 이잉크로 매각됐다. 전자책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대만 이잉크 자본의 방침에 따라 전자책 패널(EPD) 공급을 위한 하청공장으로 운영되면서 계속해서 적자를 발생해 오던 하이디스는 아이폰 등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2013년 이후 거액의 기술료 수익을 벌어들이게 됐고, 2014년에는 1천억원에 이르는 기술료 수익을 거둬 수백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했다. 2015년 1월7일 대주주 이잉크의 결정에 의해 생산중단(공장폐쇄)을 결정하고, 같은해 3월31일자로 생산부문 노동자 79명을 정리해고하고, 2016년 1월31일자로 생산시설관리 업무를 외주화하고 해당 노동자 15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 현재, 공장시설마저 철거하고 그 건물은 매각했다. 이상은 내가 정리해고 소송을 담당하면서 파악해 왔던 사실이다. 중국자본에 매각된 뒤 기술 유출에 고의 부도 의혹, 국내 공장 운영수익으로 최신 설비의 중국 공장 설립과 낙후된 설비를 가진 국내 공장 몰락, 외국 자본 하청구조 편입과 낮은 납품단가 등에 따른 적자 운영 등 하이디스에서 일어났던 일은 외국자본에 매각됐던 사업장들에서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고서 더 이상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외국자본은 해당 사업장을 정리하고서 철수한다. 그런데 하이디스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의 특허수익이 발생하게 됐다. 이것이 생산부문을 정리하고 특허사업을 하는 회사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공장은 폐쇄되고 거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됐다. 그동안 정리해고자들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 등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해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으로 다투었고, 이에 사측은 생산부문의 계속적인 적자로 인한 정리해고였다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되는 등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생산부문 폐지(공장폐쇄)를 강조했다. 1차 정리해고 사건에 관해서는 민사소송에서 해고자들이 1심에서 승소하고, 행정소송에선 1심에서 사측이 승소했다(2차 정리해고 사건은 1심 진행 중).

3. 첫 조정기일에서 재판장은 생산부문 폐지에 따른 공장폐쇄와 이후 공장철거로 인해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해고자들이 복직해 일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말했다. 최종심이 아닌 항소심 재판부로서는 관련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판결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서울고법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서는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정절차를 진행하게 된 이유였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조정절차를 진행해 왔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자문하고 해고 소송을 담당해 왔던 사측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이 해고무효 소송 1심을 패소하고서 법무법인 화우로 교체됐다. 화우는 법원의 조정에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조정기일이 열렸지만 노사 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1월30일 마지막 조정기일을 마친 후 재판부(수명법관 조찬영)는 강제조정 결정을 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밝힐 수 없지만 그 주요 내용은 해고자들의 피고 회사와의 근로관계 종료 확인 및 정리해고 소송 취하, 사용자의 해고기간 임금손실 및 향후 고용상실을 고려한 보상금원의 지급에 관해서다. 그 밖에 정리해고 관련 각종 민형사 사건 취하 및 탄원서 제출, 법원 조정을 통해 분쟁이 원만히 해결된 사실을 언론에 발표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하고 있었다. 언론 발표를 제외하고는 조정으로 분쟁을 정리할 때 일반적으로 포함하게 되는 내용이고, 비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특별한 것이라면 보상금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고무효 판결이라면 해고기간 임금액을 판결받았을 테지만 장래 고용상실분으로 일정기간을 추가로 고려한 법원의 결정을 받았으니 하이디스 해고자들은 승소판결보다 훨씬 많이 사용자로부터 지급받게 됐다. 하지만 조정결정은 하이디스에서 더는 근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법원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생산부문의 폐지 방침에 따른 공장폐쇄가 단행되고 그 공장 시설까지 철거되며 건물이 매각돼 더는 하이디스 이천공장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해도, 그래서 법적으로 하이디스 공장에 돌아가 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강제조정 결정의 나머지 사항들이 모두 해고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해도, 그 결정사항 하나로 환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감히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문을 읽는 하이디스 해고자들의 심경임에 틀림없다. 이런 해고자들에게는 이번 조정결정은 노동자측을 크게 배려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돌아갈 현장이 없어진 하이디스 해고자들에게는 판결보다 더 많은 것을 준 결정이라 말해 봐야 들리지 않는다.

4. 생각해 보면 정리해고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오늘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에게 환호 없는 승리, 아니 승리 없는 결정문을 읽도록 한 것이다. 1990년대 초 대법원은 정리해고의 한 요건인 ‘긴박한 기업경영상의 필요성’에 관해 “기업의 인원삭감 조치가 영업성적의 악화라는 기업의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생산성의 향상, 경쟁력의 회복 내지 증강에 대처하기 위한 작업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이라는 기술적인 이유와 그러한 기술혁신에 따라 생기는 산업의 구조적 변화도 이유로 해서 실제 이뤄지고 있고 또한 그럴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에 비춰 보면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한정할 필요는 없고,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봐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넓게 봐야 한다”고 판결한 뒤(대법원 1991.12.10. 선고 91다8647 판결) 지금까지 이를 판결문에 반복해서 써 왔다. 도산 등 사업장의 존립이 위태롭지 않아도 됐다. 생산합리화 등 인원을 감축할 필요가 객관적으로 인정되기만 하면 됐다. 일부 사업부문의 폐지로 인한 정리해고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생산부문의 폐지, 공장폐쇄에 따른 정리해고에 관해 무효라고 판결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례에 기대서 사용자는 하이디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해고무효 소송에서도 반복해서 주장했다. 정리해고 요건의 하나로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관해 인원을 감축하지 않으면 사업장 존립이 어려운 정도여야 한다고 파악했다면 하이디스에서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판례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정리해고의 요건을, 근로기준법 규정을 도저히 ‘긴박’하다고 볼 수 없는 경영상태까지도 인정된다고 봤다.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경영사정을 내세우는 회사에 의해 무수히 쫓겨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기업 구조조정은 이 대법원 판례에 기댄 사용자의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 아니 학살을 통해서 이뤄졌다. 규모만 달랐을 뿐 정리해고 광풍은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몰아쳤다. 정리해고법은 노동자를 정리해고에서 보호해 주는 법이 아니었다. 차라리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기 위한 법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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