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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성폭력에 침묵을 택해 왔던 이유이종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 이종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A는 직속 상사에게 1년 가까이 성희롱을 당했다. 참다못해 회사에 신고를 했지만, 회사에서는 1년에 걸친 행위 중 단 하나만 성희롱이라고 보고 경징계를 내렸다. 회사 내에는 피해자가 꾀었다는 뒷소문이 무성했다. 1년 전 같은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은 바 있는 동료 B가 소문을 말해 줬다. 성희롱을 조사하던 인사팀이 그 소문의 출처였다. A는 소문 유포를 막아 달라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인사팀에서는 소문 유포가 없다고만 대답했다.

A는 꽃뱀이라는 악명을 그대로 쓴 채 회사를 다닐 수 없다고 판단해 성희롱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보복이 시작됐다. 같은 팀 직원에게 진술서를 받았다가 그를 협박했다는 혐의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자신을 도와줬던 B도 혼자 지난 6개월간의 근태에 대한 조사를 받고 징계처분을 받았다. A에 대해서는 갑작스러운 업무전환이 통보됐다. 늘 좋은 평정을 받아 왔는데 갑자기 전문성이 없다고 했다. A와 B에 대한 징계처분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징계라고 판정되고 이틀 후, 동료직원은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A는 B가 짐 싸는 걸 도와주다 절도방조라는 혐의를 쓴 채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난방도 안 되는 빈방에 있어야 했던 A가 A4용지 한 장 쓰는 것에 대해서까지 회사는 트집을 잡았다.

A는 물론이고 A를 도와준 B도 회사 내에서 철저히 고립됐다. B의 모습을 본 회사 직원 누구도 A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소송에서는 A에게 불리한 동료 직원의 진술서만 쌓여 갔다. B도 지쳐 퇴사하고 말았다. A에게는 제대로 된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최하등급으로 근무평정이 떨어졌다. 왠지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동료에게 업무상 필요한 말을 거는 것조차 A에게는 쉽지 않았다.

안태근 검사가 가한 성추행에 대한 폭로 이후 사회 곳곳에서 다시 한번 미투(Me Too)가 터져 나오고 있다. 혹자는 왜 이제서야 말을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보낸다.

A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왜 조직 내 위계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에 대해서 쉽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는지. 왜 지금까지 침묵하고 숨기는 선택을 해 왔는지. A는 용기를 내 직장내 성희롱을 신고하고 회사의 불이익에 맞서 왔지만, 5년째 고립과 배제에 시달리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4년 가까이 수사 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오고 있다. 최근 대법원에서 승소판결까지 받았으나 A의 삶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지난해 11월 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내 성희롱 부분이 많이 개정됐다. 직장내 성희롱 발생사실이 확인된 경우뿐 아니라 조사 기간에도 피해자 등에게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 성희롱 피해자 등에게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는데 그 불리한 조치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드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성희롱 조사자의 비밀유지의무를 들어 소문 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법이 개정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법 개정만으로 당연히 부족하다.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사소한 일로 조직질서를 흐트리는 자로 취급하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미루는 수사기관 등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성희롱 피해자는 문제제기 이후 더 큰 불이익에 지치고 그를 본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지레 포기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미투 운동이 피해자를 침묵하고 곪게 만들었던 토양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종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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