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1.17 토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김기덕의 노동과 법
이재용의 나라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주일이 지나갔다. 그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관련 소식으로 채워졌다. 김여정과 김영남의 북측대표단에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일본 총리 등의 동정을 쫓아가느라 그 일은 벌써 관심에서 멀어진 듯이 지나갔다. 이재용은 지난 5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그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의 형을 받고 풀려났다. 역시 대한민국은 재벌의 나라, 삼성공화국이라는 비난과 한탄이 쏟아졌다. 재벌총수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관례’는 이재용 앞에서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은 다시 확인됐다.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3부)에 대한 비난은 판결 비판을 넘어 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하라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졌고 며칠 만에 수십만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지나갔다. 그 사이에 특검과 이재용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소식은 있었다.

2. “이재용은 판결 결과로 석방된 것이 아니라 석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판결문이 작성됐다”며, “무죄인정 등 집행유예 판결의 근거를 하나하나 분석할 필요도 이유도 없이, 공명정대하고 정의와 양심에 입각해야 할 판사가 법대와 법복을 모욕하고 스스로 재벌오너에게 몸을 조아리고 펜대를 구부려 판결문을 작성한 것”이라고 민주노총은 선고 직후 성명서를 통해 분노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법정에서와는 달리 판사실에서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삼성 재벌오너인 피고인 이재용에게 몸을 조아리고 펜대를 구부려 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해도 이 성명서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재용을 기소하고서 그 공소유지를 담당해 온 박영수 특검팀은 무죄인정 등 집행유예 판결의 근거를 하나하나 분석해 입장자료로 언론에 발표했다. 입장자료에서 특검은 재판부가 제출된 증거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재용이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항소심 판단은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고, 법정 형량이 높은 재산국외도피죄를 무죄로 판단함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게 됐던 것인데 “재산을 국외로 도피할 의사가 아니라 뇌물을 주 의사로 해외로 재산을 보냈다”고 한 재판부의 판단 논리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합병 성사, 순환출자 처분 주식수 경감(1천만주→500만주) 등 경영권 승계에 있어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얻었던” 이재용을 두고서 피해자 취급을 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유를 어찌 납득할 수가 있겠는가. 수백 번을 읽어 봐도 이재용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뇌물을 제공한 범죄자고, 그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해외로 재산을 도피한 범죄자라고 적시하지 않은 판결문을 분노 없이 읽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판결문을 진리라며 두 손으로 받들고 머리를 숙이고 조아리지 않는 한 말이다. 판결은 어느 종교 교주의 말씀이 아니다. 몸을 조아리고 펜대를 놀려서 칭송해 댈 말씀이 아니다. 분노하고 비판하면서 시시비비하며 읽을 말인 것이다.

3. 나는 어째서 분노하고 비판하는가. 수많은 범죄자들이 오늘도 집행유예로 풀려나건만, 어째서 이재용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분노하며 그 판결을 비판하는가. 이재용이 재벌 3세라서 무작정 밉다고 오늘 우리는 판결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재벌의 나라, 삼성공화국이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재산권 등 사적 소유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시장경제 질서의 나라다. 이 나라에서 삼성재벌은 소유와 시장의 왕으로 우뚝 서 있다. 자본으로서 삼성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출발해 엄청난 규모로 확대재생산을 실현해 왔다. 이 나라에서는 시장에서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삼성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이미 삼성은 시장의 지배자다. 시장질서에 따라야 하는 단순한 시장의 복종자가 아니다. 이 세상, 즉 근대 이후 세상은 순전히 시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묘비명만 세워 둔 채 국가를 시장에 파묻지는 않았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시장과 별개로 존재하는 권력의 질서를 헌법은 선언했다. 그가 시장의 군주라도 국가권력의 질서에 복종하도록 이 세상은 규정·유지된다. 누구는 국가가 자본의 인격체인 자본가의 집행기관에 지나지 않다고 비난하고, 다른 누군가는 시장·자본과 엄격히 분리된 공적 이익의 수호자인 인민의 권력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국가는 시장이 아니다. 국가는 권력관계다. 시장의 질서가 아니라 권력의 질서고, 권력이 곧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은 복종자 인민인 국민을 위해서 행사되는 것이라고 헌법은 선언하고 있다. 오늘 정의·공평·공정·공익은 국가의 것이다. 그것은 자본이 아닌 권력의 말이다. 이재용의 재판은 이런 국가의 법정에서 열릴 수 있었다. 구속과 처벌로 시장의 주인인 자본을 비판할 수 있는 권력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법으로 선언한 정의를 말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철저히 무너졌다. 법리의 숲을 헤매다 이재용을 석방할 길을 찾아서 판결문에 썼다. 그 길은 이재용의 길이었다.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이재용의 길이었다. 시장의 원리로 보자면,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과 거래를 했던 것이고, 그 거래에서 이재용은 자신이 지급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으니 성공적이었다. 시장의 원리로 보자면, 그는 승리자였다. 그런데 국정농단으로 박근혜가 탄핵될 것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폭로되면서 특검 수사를 거쳐 구속기소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재용은 피해자로 행세했다. 국회에서, 특검에서, 법원에서 최고권력 박근혜·최순실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라고 읍소했고, 그의 변호인들은 변론했다. 국가권력 앞에 시장의 권력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원리를 내세워 피고인 이재용도 그랬던 것이라고 피해자를 자청했다. 그리고 항소심 판결문에서 그는 거래의 승리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적시됐다. “이재용이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항소심 판단은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판결을 통해서 이재용은 피해자로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런 이재용 판결에서 정의를 선언할 국가권력의 일은 없었다. 범죄자 이재용을 심판해야 할 법의 정의는 “몸을 조아리고 펜대를 구부려” 굴복했다. 이재용의 법정에서 정의·공평·공정·공익은 없었다. 다시 재벌의 나라, 삼성공화국이었다. 지난해 겨울,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집회에서 노래했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여전히 희망일 뿐이라고 항소심 판결문은 비웃었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나라는 아니라며 비웃었다. 이재용은 일반 국민에 비해 특별하다고 수십억원의 뇌물을 제공하더라도 일반 국민이면 실형을 선고해야 할 사건이라도 그에게는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특별 국민’ 이재용을 위한 양형이유로 비웃었다. 이 세상에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선언한 이후 이런 판결은 없어야 했다. 국가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정의라고 말해 왔던 법 앞의 평등은 이재용 앞에서는 법 앞의 평등은 없다고 판결을 통해서 법원은 선언하고 말았다. 분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판 없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정의는 자본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웃음에 분노 없이, 비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록 보잘것없는 정의였지만, 그것이라도 정의로 선언돼야 한다는 우리의 법적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서 망연자실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분노하고 비판할 일이다.

4. 분명히 말하지만 이재용의 나라는 아니다. 이재용을 특별 국민으로 국가권력이 조아리는 나라는 법 앞의 평등을 기본권으로 선언한 우리의 공화국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라고 선언하고서 탄생했다. 현행 헌법도, 1948년 제헌헌법도, 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단체의 헌장들도 특별 국민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인민)을 위한 나라라고 선언했다. 삼성공화국은 아니다. 재벌의 나라는 아니다. 온갖 법적 기교로 특별 국민 취급을 받고자 기를 써도 이 나라의 권력은 그들에게도 법 앞의 평등, 법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구체적 사건에서 법을 집행할 법원이 할 일이다. 기존 법리를 악용해서 법의 심판을 면하고자 부리는 특별 국민과 그 변호인의 술수를 부정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은 치밀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낡은 법리를 극복하고 특별 국민을 심판할 법리를 끊임없이 세워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에서 특별 국민을 “석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판결문이 작성되는 일”이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기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