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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출소로 본 정의, 경제학, 그리고 법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6일 2심 법원 판결에 따르면 박근혜 게이트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없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준 것이 아니라 박근혜 강요로 돈을 뜯긴 것뿐이었다. 여러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은 이번 판결을 두고 사법정의가 사망했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판결을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 판결이 단지 판사 한 명의 일탈이나 취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도 판결이 뒤집힐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 정의에 아주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법 정의의 핵심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인신 구속 없는 자유로운 개인이 재산권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거래를 하면,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공동체 다수의 행복에 기여하게 된다는 그 이론 말이다. 인간의 이상적 권리인 자유를 성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시장경제며, 이 시장경제는 약탈을 막는 재산권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정의다. 그리고 이런 헌법적 정의는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공동체 다수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자유주의적·공리주의적 정의관과 재산권으로 거래비용을 줄이면 시장이 최적의 사회 후생을 약속한다는 시장주의 경제학을 과학으로 전제한다.

우리나라 법의 이런 세계관은 노동권을 다루는 대법원 판결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3년 가스공사 파업을 다룬 대법원은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돼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판결했다. 2013년 통상임금을 다룬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협이 예상된다면 ‘신의칙’ 위배를 이유로 소급분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진보진영은 보통 위 두 판결을 노동권보다 경영권을 우선하는 편향적 판결이라고 비판하지만, 재산권 행사로서 경영권이 노동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헌법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자유·시장·공리의 세계관에서 볼 때 노동권은 일시적이고 특수한 이익인 데 반해, 재산권은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이 부회장을 구속하는 것도 그다지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 2008년 조준웅 삼성특검은 삼성 경영권 승계 비리를 “재벌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과 법적 제도적 장치 간의 괴리 또는 부조화에서 비롯된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라 평가했는데, 이는 그가 생각한 사법 정의를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을 석방한 2심 판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경영권 승계 작업은 없었다”는 대목 역시 조 특검의 세계관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삼성그룹의 재산권 행사 과정에서 현실적 마찰이 있었으나, 이것이 재산권 보호로 공익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리에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 부회장 석방은 상속 역시 재산권의 중요한 한 부분이란 점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 만약 재산권이 상속을 포함하지 않으면, 재산권은 자기 생애에 소비될 수 있는 부분까지만 권리가 보장되는 제약이 발생한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재산 규모도 더 커지기 때문에 상속이 재산권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 4위 브랜드이자 대한민국 경제의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는 삼성그룹의 상속은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시장·자유·공리의 세계관과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를 사실상 무죄로 판결한 2009년 대법관들이나, 이재용을 석방한 2018년 2심 판사나 모두 이런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개혁진영 언론들은 이재용이 일부 뇌물이 그나마 인정됐음에도 집행유예로 석방된 것을 두고 “유전집행유예 무전실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보다 적은 액수의 뇌물죄 사범들이 대부분 징역형을 살았기 때문이다. 법이 평등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양형의 차별 또한 사법정의에 그렇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법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 효율성에 최선이기 때문이다. 법은 경제적 효율성을 정의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다. 법 위반을 처벌해 얻는 편익과 비용을 따져 볼 때, 석방과 동시에 평택 반도체공장에 30조원 투자 결정을 내리는 이재용과 다른 사람들이 같을 수 없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재벌 총수들이 법원에서 특별히 선처를 받는 이유기도 하다. 판사가 재벌에 친화적이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법 정의가 그렇다.

요컨대 나는 현재의 사법정의를 가지고 이 부회장 석방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 앞의 평등을 내세워 판사와 법원을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비난으로 이 부회장을 다시 감옥에 가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법원이 개혁된다고 해도 자유·시장·공리의 세계관에 입각한 법은 태생적으로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의 자유를 더 많이 보호하며, 그것의 보호가 시장을 효율적으로 작동시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여긴다. 이것이 시장주의 경제학의 교리이며, 오늘날 우리 법 체계를 뒷받침하는 과학이다.

우리가 다른 판결을 원한다면, 이 세계관 전체를 흔드는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재산보다 노동을, 시장을 통한 효율보다 공동체 내부의 평등을 더 중요시하는 세계관 말이다. 소셜미디어에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는지 회의가 든다”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촛불항쟁을 진짜 혁명으로 만들려면, 이재용 석방을 계기로 좀 더 근본적인 변화 방향을 고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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