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예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6명의 여성들이 구원을 찾아 대모들이 살고 있는 ‘녹색 땅’으로 향하는 영화다. “We are not things(우리는 물건이 아니야)”라는 대사는 주인공이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녹색 땅으로 향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모든 것이 힘으로 지배되는 남성 지배체제에서 여성들은 독재자 아이를 출산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남아 있는 남성 위주 직장세계에서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화병에 꽂혀 있는 꽃도 아니며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장식용 그림도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하는 노동자들이다.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사업장에서 으레 나오는 문제는 직장내 성희롱이다. 김포공항 미화노동자들이 그랬고, KTX 승무원들이 그랬다. 비단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은 직종만 그럴까. 남성 카르텔이 견고한 검찰에서도 현직 검사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된다. “현직 검사도 저런 일을 당하다니”라는 반응은 새삼스럽다. 정말 몰랐을까. 인구의 절반, 직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암암리에 겪었던 성희롱에 대해. 이처럼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피해자의 직업·지위·권력은 무력하다.

그러나 점차 늘어만 가는 직장내 성희롱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무하다. 올해 5월29일부터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 조치의무가 강화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될 예정이라지만 현장에서 관련법이 실제로 시행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중 0.6%만이 직장내 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직장내 성희롱이 인사권을 가진 상사와 부하직원, 권력관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자신의 불쾌함을 표현하는 피해자는 예민한 혹은 까탈스러운 ‘여성’이 됨과 동시에 분위기를 못 맞추고, 평화로운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부적응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적인 내부조사와 조치에 문제제기를 한 여성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자신의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다.

외부기관에 문제를 제기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노동관계법에 따라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진정이 제기되면 관할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맡아 진행하게 되는데 대부분 피해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근로감독관이 배치되거나, 일반 체불임금 진정사건과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질조사하는 등 일반 노동사건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전담하는 전문성을 갖춘 근로감독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되고 인식이 변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직장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로 바라보지 않는 성차별적 인식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피해자가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직장내 성범죄 뉴스와 침묵을 깨고 나오는 피해 경험담에 우리는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던 직장내 성희롱에 조금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으며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 주인공들이 녹색 땅을 찾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와 싸웠던 것처럼, 우리도 결국은 이 자리에서 침묵을 깨고 싸워야만 한다. 녹색 땅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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