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지난달 25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결정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다수는 적극적인 참가를 주문했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여부는 중앙집행위에서 의결했던 관례에 따라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이번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위한 위원 구성, 의제, 운영 방식, 명칭 등’으로 한정돼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면, 그 기구에 민주노총이 참가할 것인가 여부는 대의원대회를 거칠 것이다.

민주노총 결정에 대해 안팎에서 찬반 목소리가 나온다. 다수는 찬성 목소리다. 그럼에도 사회적 대화에 나서면 일방적 양보를 강제할 것이라는 우려는 새겨듣지 않을 수 없다. 1기 노사정위원회부터 역대 정부와 재계가 줄곧 그랬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 일방적 양보 판이 되지 않도록, 수세에 몰리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고 예상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그에 따른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운동은 노·사·정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정부가 주어고 민주노총은 술어가 돼 버렸다. 특히 노·사·정 교섭에서 그랬다.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한쪽은 내심 기대하고, 한쪽은 대놓고 부정한다. 한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고 있으니까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야 한다 하고, 한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럴 것이니까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면 안 된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이쪽이든 저쪽이든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역대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 맞다. 그것을 부정해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그러나 밑바닥 노동의 눈높이에서 보면 부족한 것도 맞다. 그것을 부정해도 사회를 설득할 수 없다. 진일보한 측면만 부각하는 것도, 부족한 측면만 부각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런 정치 측면에서 앞으로 노동정책이 어떻게 바뀔지는 대통령 본인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것이 정치다. 따라서 대통령 입장에서 민주노총은 대상이다. 한국노총도 대상이고, 재계도 대상이다. 각각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태도는 바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주어가 돼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 입장에서 주어는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

이 시기 민주노총이 바꿔야 할 사회양극화 해소와 노조할 권리 등 얻어야 할 목표를 놓고,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투쟁력과 사회 신뢰도와 영향력을 놓고, 투쟁과 교섭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민주노총이 주체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있다. 교섭을 주도할 수 있다. 투쟁을 되살릴 수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대통령을 당기고 재계 태도도 바꿔야 한다.

현 시기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고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노총의 투쟁력만으로는 현실을 돌파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주력대오는 이 사회 소득 상위 10%에 진입해 예전 같은 방식의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 극단의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는 밑바닥 주변부 노동자는 생계 고리에 묶여 사회 구조를 바꾸는 투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민주노총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서 뼈아프게 경험했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자체를 반대하는 정규직 교사에게 투쟁만 부르짖는 어불성설이 통하겠는가. 계약의 굴레에 묶여 있는 기간제 교사에게 투쟁만 부르짖는 잔인함이 통하겠는가.

체제전복전략 DNA에 묶여 있던 민주노총의 기존 전략은 사회를 바꾸기는커녕 뒤로 후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이 됐다. 노동자 절반의 연소득이 2천만원을 밑돈다. 상위 10%의 중심부 노동자와 하위 10%의 주변부 노동자 임금격차는 5배 이상 벌어졌다. 사내 복지와 연금 등을 따지면 10배 이상이다. 바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담대한 개입전략을 구사해 보자. 사회적 대화기구를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그 장을 활용해 사회 분위기를 바꿔 보자는 것이다.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극단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노동 분단을 해소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자는 것이다.

1·3기 노사정위원회로 큰 홍역을 치른 민주노총인데,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간다 해서 감히 누가 일방적 양보교섭을 받아 오겠는가. 그러면 집행부 총사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는 점을 생생히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실력도 결의도 준비도 없는 체제전복전략 DNA에 묶여 기·승·전·투쟁에만 머물 것인가. 중심부 노동자만 먹고살 만한 이 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언제 올 지 기약도 없는 자본주의 이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하고 구조를 바꾸고 미래를 실험하자. 우리 살아생전에 최소한 북유럽만큼이라도 만들어 놓자.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