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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상고 없으면] 삼성반도체 유해인자 측정보고서 공개된다법원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 첫 판결 … 생명·안전 관련 알권리 우선 판결 이어져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경영·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비공개했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보고서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중요한 자료지만 노동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해 왔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과 관련한 특별감독보고서와 종합진단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법원이 생명·안전과 관련한 알권리가 기업 영업상 이익에 앞선다는 판례를 구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법원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영업비밀 아니다”

4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는 지난 1일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이아무개씨 유족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중 근로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이씨는 2014년 8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이씨 유족은 산재 입증을 위해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노동부는 '기업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2016년 이씨 유족은 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유족 청구를 기각했는데, 2심 재판부가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전고법이 정보공개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보고서다. 쟁점은 단위 작업장소별 유해인자 측정위치도 공개였다. 측정위치도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개략적인 도면 위에 유해인자 등의 측정위치를 표시한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공정 간 배열, 라인에 배치한 설비의 기종과 보유대수, 생산능력 같은 정보가 알려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유해인자) 측정위치도가 공개될 경우 기술적 노하우가 유출됨으로써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측정위치도가 있어야만 원고는 해당 사업장 내의 어느 곳에서 어떠한 유해인자들이 노출가능하고 실제로 얼마나 노출됐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며 "근로자의 생명·신체·보건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판시했다. 특히 “작업장 어느 공정에서 유해인자가 검출돼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망인을 비롯해 해당 작업장의 전·현직 근로자들의 안전 보장, 나아가 인근 지역 주민들의 생명·신체의 건강 등의 가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판시했다.

“산재 입증에 도움, 노동부 상고 포기해야”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유해인자를 측정한 결과를 기재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유해인자가 노출되는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은 작업환경을 측정해 그 결과를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작업장 노동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데 유독 삼성전자는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거나 알맹이가 없는 문서를 제출했다. 2012년 법원은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A씨 소송에서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받아들여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삼성전자는 내용 중 상당 부분(측정기관·CVD 외 측정결과 등)을 삭제한 채 제출했다.

2016년 직업병 피해자 B씨 소송에서도 삼성전자는 법원의 2003년과 2004년 보고서 사실조회 요청을 거부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2003년에는 작업환경을 측정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2004년 보고서는 작업환경 측정결과표만 공개했다.

노동부도 마찬가지였다.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일하다 지난해 1월 백혈병으로 숨진 김아무개씨 소송에서 법원은 노동부에 "김씨가 근무했던 사업장 보고서 전문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핵심내용(측정대상 공정)을 삭제한 일부만 제출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은 별도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해야만 했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작업환경측정은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1천여개 화학물질 중 측정방법이 있어서 그나마 관리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한 10~20% 정도의 물질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직업병 피해자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마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노무사는 “이번 판결로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보고서가 공개되면 발암물질이 노출될 수 있는 장소와 발암물질의 실제 노출량을 알 수 있게 된다”며 “보고서를 통해 공장의 화학물질 노출 전반을 알 수 있게 되고, 산재 입증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전보건자료 공개 범위 확대에 영향 줄까

이와 관련해 안전보건 자료 공개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부가 마련한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지침’이 이번 판결 결과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1월 지침에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측정대상 유해인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은폐했던 정보 상당 부분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자운 변호사는 “노동부가 김아무개씨 소송에서 해당 지침에 따라 보고서를 공개했을 때 가장 중요한 측정대상공정이 은폐돼 있었다”며 “법원이 측정대상공정도 모두 공개하라고 한 만큼 노동부도 이에 맞게 (공개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지침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특별감독보고서 공개 판결과 이번 판결 모두 사업장 안전보건 관련 자료에 대한 공개 원칙을 명확하게 한 판결인 만큼 다른 자료 공개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며 “노동부가 상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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