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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와 열린채용

채용비리가 적발된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서 악취가 진동한다. 새해 벽두부터 비리기관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린다. 취업을 준비하거나 재직 중인 이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다. 직업선택에서 기회 평등이라는 소박한 염원마저 앗아 가니 그 분노와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비리 형태는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지난달 30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유력 정치인과 지인 청탁부터 임직원 친인척 자녀 특혜까지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5천건에 육박한다. 감사에 안 걸린 공공기관이 거의 없다. 비리 유형을 보면 너무 교묘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적발된 공공기관은 가점 대상자에게 가점을 부여하지 않아 탈락시키고, 서슴없이 서류를 조작해 유력인사 자녀를 합격시켰다. 공문서 위조까지 저질렀으니 중대범죄다.

금융감독원이 적발한 금융기관 채용비리는 점입가경이다. 비리로 입사한 이들 가운데 전·현직 임원 자녀가 상당수 포함됐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임원과 그 자녀가 함께 일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면접 점수 꼴등이 상위권으로 둔갑해 합격증을 받았다. 무자격자임에도 외국어능통자로 우대받은 이도 있었다. 채용 과정에서 반칙과 특권이 판을 쳤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조카를 특혜로 채용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은행을 채용비리 복마전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두 회장은 '셀프연임' 논란에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채용비리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비리가 확인된 이들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심판받아야 한다. 채용비리에 연루됐음에도 자리에 연연하는 금융권 행장과 지주사 회장은 즉각 사퇴해야 마땅하다.

채용비리 수사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쳐선 안 된다. 비리 기관들은 자신들만 통하는 방식으로 채용하고 요직에 승진시키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차제에 채용비리 유형을 분류하고, 몸통과 머리를 밝혀내는 근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도개선도 절실하다. 채용비리 대안으로 줄곧 열린채용이 거론된다. 열린채용은 공개채용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필기시험과 면접 중심으로 인력을 선발한다. 현대판 음서제와 비공식 추천제도를 배제한 방식이다. 상시적 구조조정이 이뤄졌던 외환위기 이후에는 공개채용을 통한 신규인력보다 경력직과 인턴사원 위주로 선발했다. 학벌보다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고려하는 풍토가 조성됐다. 일부 대기업은 학력제한과 필기시험을 폐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학연·지연은 여전히 채용 과정에서 변별력의 핵심 요소였다. 참여정부 시절 채용방식은 전환점을 맞았다. 학벌과 지연이 아닌 직무능력중심 사회를 선언한 노무현 정부는 열린 채용을 구호로 내걸었다. 정부·공공기관에서 시행한 지역인재 채용목표제·채용추천제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에게 열린채용 취지에 맞는 표준이력서를 보급하고, 능력주의 인사제도를 권장했다. 한편에선 직무능력 평가기준인 국가직무능력표준(KSS)를 추진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열린채용이 퇴색했지만 KSS는 또 다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7월부터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블라인드 채용도 이러한 흐름에 속한다. 블라인드 채용은 출신학교·가족관계·학력·외모 등의 항목을 배제한 채용방식이다. 명칭은 달라졌지만 노무현 정부 열린채용이 부활한 모양새다.

출발선에 다시 선 느낌이지만 채용제도가 나아갈 길은 분명해졌다. 더 이상 비리를 청산하지 않고 채용제도를 개선하는 허세는 부리지 말자. 썩은 흙(채용비리)은 걷어 내고 열린채용이라는 새 흙으로 갈아 줘야 한다. 직무능력에 맞는 선발·평가제도는 꿈나무를 키워 낼 물과 비료다. 열린채용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요소다. 채용비리 적폐청산이 이러한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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