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포스코 하청업체 TCC한진 소속 노동자 4명이 냉각기 교체작업 중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산업재해로 한 달에 20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이 나라에서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뼈 빠지게 일하고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으면서 억울하게 죽었습니다”는 유가족의 절규는 고인이 된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TCC 한진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에 공사기간 단축을 이유로 무리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들이 맡은 일은 본사인 포스코의 업무에 비해서 더 위험하고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다시 말해 위험은 외주화됐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싼값에 노동력을 쓰면서 책임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주하청업체들이 일하는 공간은 포스코 소유다. 외주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포스코 정규직 노동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떤 장비도 건드릴 수 없다. 당연히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버튼 하나만 잘못 누르면 죽을 수도 있지만, 안전을 확보하라는 요구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원·하청의 관계다.

그러나 위험만큼의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원청 기업의 70% 수준을 받았다. 위험한 일을 뼈가 빠지게 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런 노동자의 죽음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동료를 떠나보내고 난 뒤 다시 그 죽음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남은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국고용정보원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위험 요소에 2배가량 더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고 사망률이 원청의 4배에 달했다. 하지만 보고서와 발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런 가운데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지난달 31일 열렸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댄 것이 19년 만인지, 8년 만인지는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정이 새로 만들려 하는 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집의 가장 큰 역할은 사람이 살 수 있느냐 여부다. 사람이 살 수 없다면 그것은 겉만 그럴싸한 모델하우스에 불과하다.

노동자와 국민을 추위와 더위에서 막아 줄 수 있는 집, 비바람에서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는 집의 역할을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가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가 ‘협상’이라는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 전 한 배우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드라마 제작 실태를 ‘고발’했다. 허정도 배우는 드라마 현장이 불법이 난무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현장은 최저임금법도 근로기준법도 설 자리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에게 전한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는 작품의 첫 틀을 짤 때,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의 몫을 먼저 정하고 그 나머지를 힘의 순위에 따라 나눠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 방식에서 벗어나 가장 힘없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울타리를 먼저 만든 다음, 그 나머지를 힘 있고 기여도가 큰 사람들이 나누는 것. 그것이 드라마 현장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는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도 해봅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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