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배낭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만큼 이상한 나라가 없다.

네덜란드나 핀란드처럼 나름 선진국이면서 IT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대형호텔이나 쇼핑몰 주차장에 우리처럼 차량번호를 자동으로 감지해 작동하는 차단기가 있다. 점멸등으로 빈 주차공간을 색깔별로 알려 준다. 대신 주차장 어디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주차도우미는 없다.

반면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처럼 우리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못한 나라의 주차장엔 어떤 전자장치도 없다. 오롯이 주차도우미들이 이를 대행한다. 그런데 한국 주차장만 특이하게도 전자장치와 주차도우미가 공존한다. 비용절감만이 경쟁력이라고 목소리 높이는 재벌그룹의 유통매장마다 양자가 공존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만큼 전자장치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꽤 잘사는 나라인 독일만 해도 게스트하우스 대문과 방키 모두 쇠로 만든 열쇠다. 그것도 한 바퀴 반 이상은 돌려야 잠기거나 열린다. 아내는 “성질 급한 사람은 문 열다가 숨넘어가겠다”고 늘 말한다. 번호키와 마스터키를 갖다 대는 것만으로 문이 열리는 우리 문화와 너무도 다르다.

첨단 과학문명을 가장 적극 수용한 한국의 주차장이 도우미까지 고용하는 건 분명히 중복투자다. 돈만 되면 뭐든 하는 한국 기업들이 이런 중복투자를 버젓이 방치하는 이유는 뭘까.

전 세계에 이런 중복투자를 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두 나라는 오랜 기간 봉건적 유교 국가였다. 주차도우미는 옛날 양반계급이 노비 부리는 마음으로 고용하는 게 분명하다. 이 나라엔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이런 전근대적 사고가 곳곳에 즐비하다.

아파트 경비원을 뽑아 놓고 정작 발레파킹이나 세차도우미로 사용하고 지들 장바구니를 나르는 짐꾼처럼 부린다. 압구정동 옛 현대아파트 얘기다. 이 아파트는 최근 경비원 96명 전원을 해고하고 간접고용으로 전환했다. 조선일보는 이 아파트 경비원을 취재한 1월31일자 12면 기사(경비원들 8억원 민사소송, 현대아파트에 또 뭔 일)에서 “새벽 3시에 대리주차를 한 적도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행여 주민들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주의 깊게 주민들 입장도 썼다. “휴식시간에 잠깐씩 하는 대리주차 등을 정식근무로 보기 어렵고, 경비원들의 호의”라는 게 조선일보가 인용한 주민 입장이다.

기자에게 묻고 싶다.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 사무실에 앉아 졸다가 상사가 지시한 심부름을 하는 게 ‘온전한 휴식’인가. 새벽 3시에 무전기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대리주차를 하는 게 ‘호의’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현대재벌이 지은 압구정동 옛 현대아파트는 1978년 출생 때부터 요란했다. 30여채가 언론사 간부들에게 촌지로 뿌려졌고(동아일보 78년 7월4일자 1면), 80년대 민중가요에도 등장했다.

덴마크엔 국회의원도 장관도, 총리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한국엔 좀 산다는 인간들마다 자전거는 고사하고 지들이 운전하는 자동차조차도 지들이 주차하지 않으려 들까.

이런 케케묵은 유교식 관습문화는 세계의 조롱거리다. 세상에 고정된 무엇은 없다. 늘 변하기 마련이다.

기소독점주의에 기대어 권력의 주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무소불위 검찰을 만든 건 박정희 때부터다. 권승렬 초대 검찰총장은 49년 6월6일 말단 경찰에게 얻어맞고 뒷머리에 손을 얹고 무릎 꿇은 채 반민특위 뒷마당에 앉아야 할 만큼 힘이 없었다. 친일경찰을 총애했던 이승만 정권 당시 얘기다.

이랬던 검찰이 박정희 땐 거꾸로 뒤집혔다. 50대 경찰간부가 20대 검사에게 구둣발로 차이고도 “영감님”이라고 깍듯이 불러야 했다. 모두가 미쳐 돌아가던 시절의 얘기다. 검찰, 니들 노는 꼴을 보니 아직 사람 되긴 멀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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