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노사정대표자회의” “6자 모두 참석” “8년2개월 만에 양대 노총 모두 참석” 같은 제목 아래 짧은 소식들이 이어졌다. 따지고 보면 노사정 대표자 모두가 모인 자리는 기억조차 없다. 글자 그대로 ‘처음’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9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8자 회의를 제안했다. 사회적 대화로 나아가는 사전 준비단계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 복원 내지 새로운 틀이 요구되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대화 주체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물꼬를 튼 것이다. 이후 대통령도 기회가 날 때마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를 정상화하겠다"며 여러 차례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노동계 한 축인 민주노총 신임집행부가 참여하면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성원됐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성사가 현재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양대 노총이 곧장 복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표자회의와 노사정위 양자는 엄연히 다르다. 일회성이 될지 아니면 상설화가 될지 향후 운영에 관해서는 사전에 정해진 게 없다. 다만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양대 노총이 지금과 같은 모습의 노사정위로 복귀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공정한 ‘운동장’이 마련된다면 개별 주제를 놓고 보다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규범적으로만 평가해 보자면 31일 대표자회의는 6주체가 임의로 모인 자리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법적 근거나 구속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특히 노동현장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 정권 9년을 넘어 켜켜이 싸인 난제들이 풀리는 시작이길 바라는 기대일 것이다. 10년을 넘긴 통상임금에서부터 올해 초 첫걸음을 뗀 최저임금까지, 주 40시간이 도입된 지 15년을 맞고 있지만 주 68시간이 여전히 적법하다는 행정부의 여전한 지침까지 노동조건의 기초조차 규범화되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며 호들갑이지만 노동 제도만은 제자리였다.

누가 뭐라 해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지금 정부는 광장 촛불의 결과물이다. 촛불의 대부분은 우리 주위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매우 단순하다. ‘상식’과 ‘법’이 지켜지는 나라 아니었나. 노동자로서는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조합이 보장되는 노동현장이다. 그리고 희망이 실현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조바심이 난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다 시간이 흐르면 또 흐지부지되는 건 아닌지. 촛불이 여러 갈래로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다.

사실 광장에 모였던 모든 이들의 마음은 ‘나라다운 나라' 하나로 모아졌다. 하지만 이후 생활현장은 다르다. 닥치는 개별 사안(이를테면 주거·교육·복지·비트코인·남북단일팀)에서는 각자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보듯이 어쩌면 노동 내부에서는 더 급격한 분화와 갈등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이 의도적으로 부추기고 있지만 그것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의 빠른 복원이 필요하다. 촛불정신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할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해 사회적 대화 제안에서 김주영 위원장이 밝혔듯이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문제 논의에 각 주체가 참여하고 합의 과정을 거쳐 정책 집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시간 국회와 정부가 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혹시 “헌법과 법률상 근거가 있느냐”며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토를 다는 자들이 어떤 역할을 해 온 것인지 따져볼 일이지만, 이참에 대표자회의에서 개정 헌법에 사회적 대화를 상설화하는 것도 제안해 본다.

지난 정권에서 ‘노동’은 없었다. 눈도 깜짝하지 않고 총연맹을 침탈하고 위원장을 감옥으로 보냈다. 머지않아 밝혀지겠지만 정보기관원이 주요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뒤를 밟았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부끄럽고도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서서히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31일 만남은 여전히 우리사회에 ‘노동’이 있음을 보여 준다. ‘대화’의 과정을 통해 노동이 ‘존중’받고 있음도 보여 줘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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