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산업재해 신청인 사업장에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현장조사를 나갔다. 공단에 면담을 요청한 회사는 우리 사업장에서 산재가 승인된 적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그 사업장은 중장비를 다루고 정비하는 곳이었다. 산재 신청인 외에 다른 노동자들도 신청인과 유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다친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장비를 다루는 사업장에서 지금까지 산재승인이 한 번도 나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의견 반영 통로가 없다는 지적에 정부 관계자는 그들은 이미 직고용된 노동자들이고 처우가 더 나아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일부러 배제했다고 대답했다. 기간제 노동자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예전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규직 됐으니까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내가 무슨 업무를 맡게 될 것이고, 업무평가는 어떻게 이뤄질 것이며, 내 경력은 어떻게 산정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청소년 노동교육을 하러 특성화고를 찾아간 자리에서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왔다. 현장실습 3일 만에 복교했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기로 했는데 3일 내내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9시가 지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학생이 취업부장에게 들었다는 말이 놀라웠다. “표준협약서 받으러 다시 다녀와.” 취업부장은 3일 내내 부당한 격무에 시달린 학생의 고생보다 표준협약서를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해결이 우선이었다.

당사자들이 사라졌다. 회사와 정부, 학교의 시선에서 아프고 다친 노동자와 학생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무재해 사업장에 가산점이 존재하고, 산재 비율에 따라 보험료가 증감하는 현실에서 산재신청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눈엣가시가 된다. 정규직 전환비율로 평가받는 기관들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전환정책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을 유인이 없다. 표준협약서 작성 및 보관이 의무인 학교에서 복교생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 역시 없다.

하지만 불편하다. 결국 처음엔 다 사람을 위해 도입된 정책이고 법·제도였는데 그 집행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가장 쉽게 배제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당연히 계량적으로만 평가되는 제도 자체가 제일 큰 문제다. 하지만 불편함이 가시질 않는다. ‘법과 제도’는 공식이지 상식이 아니라는 선배 노무사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법과 제도를 지키는 일’과 ‘상식을 지키는 일’은 같은 듯 다르다.

법과 제도는 집이다. 집을 어떻게 꾸밀지는 그 안의 사람들이 결정한다. 집안 분위기 또한 그 구성원들에 의해 달라진다. 나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이 넘치는 드라마틱한 집을 꿈꾸는 게 아니다. 다만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에 의해 상처받거나 고통받지 않고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집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장에서 다친 사람에게 괜찮은지, 몸은 좀 나아지는지부터 궁금해할 수 있길 바란다.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당신을 위한 정책으로 이렇게 바꾸려고 하는데 어떤지, 당신을 위한 것이 맞는지 묻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면 한다. 고생하다 복교한 학생에게 상처가 남지는 않았는지, 보듬어 주고 살펴보는 마음이 우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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