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책 발표 사흘 만에 울산 현대중공업·포스코 포항공장·현대자동차 아산공장 하청업체·여수 율촌산업단지에서 8명이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노동계는 "말뿐인 산재사망 대책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이달에만 확인된 산재사망자가 14명이다. 지난 26일 전남 여수 율촌산단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율촌산단 금속가공업체에서 철판 용접을 하던 30대 비정규 노동자가 넘어진 철판에 깔려 숨졌다.

25일에는 경북 포항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산소공장 14플랜트에서 냉각탑 필터교체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같은날 새벽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작업 중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는 23일 현대중공업 사업장 2도크 동편 블록 연결 작업장에서 산소절단기로 작업을 하던 중 일어난 불로 전신 75% 화상을 입었다.

24일에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 현대중공업 가공소조입부 4베이에서 현대중공업 자회사인 모스의 하청업체 크레인기사가 크레인 상부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날 충남 아산 자동차 부품업체에서는 30대 노동자가 프레스기에 몸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2일에는 경북 구미 공단동 건설자재 공장에서 시설물이 떨어져 20대 노동자가 깔려 죽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에서는 안내업무를 하던 용역업체 직원이 공항 셔틀버스에 치여 숨졌다.

이달 17일에는 전남 영광에서 교량건설 작업 중이던 60대 노동자 두 명이 철근더미에 깔려 사망했다. 11일 울산 울주군 S-OIL 공사현장에서 플랜트 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진 뒤 목숨을 잃었다. 이보다 하루 앞선 10일에는 경기도 고양 덕양구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이동식크레인으로 인양되던 철근이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인근에서 일하던 환경미화원이 철근에 맞아 숨졌다.

지난해 8월 정부는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핵심 국정목표로 삼아 2022년까지 산업안전·교통안전·자살예방 등 3대 분야에서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잇단 산재 사망사고에 정부 대책이 무색한 실정이다.

노동계 "위험 외주화 금지 대책 부족"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한다. 가려는 방향은 맞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산재 예방이 아닌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양대 노총은 산재사망자 대다수가 하청노동자라는 데 주목했다. 민주노총은 26일 성명을 내고 "하청노동자 죽음의 행진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현대중공업에서 이틀 새 하청노동자를 포함해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며 "지난해 타워크레인·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사망자, 철도 정비·보수 노동자 사망자, 광주에서 2주 사이에 연이어 숨진 환경미화원 두 명, 최근 인천공항 주차관리원 사망자 모두 하청노동자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정부 대책에는 기술적 대책과 원청의 총괄책임 강화만 있다"며 "최근 발표된 환경미화원 안전대책에도 정작 사고가 다발하는 민간위탁용역에 대한 직접고용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가 외주화 금지 대상으로 밝힌 업무는 도금작업과 중금속 작업 등 16개 작업으로 한정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2월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도급금지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며 "수많은 위험업무가 도급금지에서 제외됐다"고 아쉬워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률로 위험 외주화를 금지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도 "경영계가 반대해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같은날 성명을 내고 정부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정부 대책은 그동안 반복돼 왔던 것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했고, 산재 사망사고는 또다시 발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더 이상 말이 아닌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대통령 산하에 '노동자 산업재해 예방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산재사망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 관리·감독 강화해야"

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영세 사업장 관리감독 강화를 주문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포스코·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STX조선 같은 대기업에서 산재가 일어나면 정부·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데,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주로 20억원 이하 소규모 건설현장"이라며 "이런 곳은 정부 손길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산업안전감독관 인력을 늘려 지도감독과 기술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있는데, 산재사고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며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의무를 30인 미만까지 넓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국가가 관련 비용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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