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하위권으로 평가되는 노동기본권을 개선해야 한다. 노조법 전면 개정과 노조활동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타임오프를 개선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달라.” 지난 19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청와대 오찬에서 한 인사말 중 일부다. 김주영 위원장이 “노조활동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개선”을 들고나온 대목이 눈에 띈다.

정부 출범 후 약 8개월 동안 짧은 기간에 비해 적지 않은 노동개혁이 집행됐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지침과 성과연봉제 지침의 폐기, 공공부분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 굵직굵직한 사업이 한창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정도 얘기는 있었지만, 정작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근간에 관한 정책은 찾기 어려웠다. “노조하기 쉬운 세상이 언제나 오려는지” 하는 조바심들이 곳곳에서 일기 시작한다.

그런데 때마침 김주영 위원장이 ‘타임오프’를 거론했다. ‘타임오프’가 노동조합 운동에 얼마나 큰 해악인지, 아마도 정권은 모를 수도 있다. 타임오프 제도는 2010년 1월 개악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핵심내용이다. 그리고 지난 8년, 표현을 빌려 쓰자면 노동현장은 타임오프로 황폐화됐다. “영세한 조직의 노동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하겠다”는 입법자의 의도는 간곳없었다. 택시사업장 같은 영세한 조직의 노동조합활동이 훨씬 더 위축돼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시장·노동현장의 양극화는 타임오프를 기점으로 더욱 심화됐다.

당시 입법자를 위한 변명도 있다. 법률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집행부가 월권한 것이 타임오프 정착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변명일 뿐이다. 타임오프 도입은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 지급에 한정된 내용이다. 법문이 명확하기 때문에 굳이 많은 해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전임 활동을 근로로 인정하고 그 시간만큼의 임금을 주겠다”는 정도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엄청난 양의 행정해석을 쏟아 냈다. 전임자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사무실부터 전기 공급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단하란다. 바야흐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을 무력화하는 데 타임오프를 끌어들였다.

늦었지만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 “노동조합 전임자는 노사 자율로 정하라”고 법률을 바로잡는 게 가장 좋다. 험한 길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쉬운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단체협약에 개입하는 것을 넘어, 타임오프와 관련돼 정부가 위법하게 내린 모든 행정해석을 폐기해야 한다. 이러한 행정집행만 하더라도 현장은 크게 반응할 것이다. 타임오프 한도를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관의 권한이다. 예를 들어 타임오프 한도를 현행 상한방식이 아니라 하한으로 정해야 한다. 타임오프를 빌미로 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단속은 행정부의 1차적 책무다.

타임오프를 제대로 집행해 노동조합 전임자 활동을 보장하면 명목에 머물러 있는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실현한다는 이상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현 정부가 계획하는 많은 노동 및 사회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최근 정부의 개혁정책은 그 의지와 의도에 비해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하곤 한다. ‘최저임금의 역공’ ‘시장의 역공’ 같은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기사에 많은 이들이 솔깃해하는 게 사실이다.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이 현장을 찾아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를 설명하지만 뭔가 공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미리 준비를 하지 못했나” 하는 물음도 해 본다. 이른바 노동조합이 있는 대규모·정규직·제조업 사업장의 분위기도 환영 일색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집행 의지나 선의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 많은 일을 의욕적으로 하겠다는 의사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일의 수순과 방법에 있다. 좋은 정책 목적이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상치 못한 오류를 줄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현장을 뛰어다니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 특히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노동조합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할 ‘자격’을 갖춘 노동조합이 더 크고 많아야 하지 않겠나. 그 시작은 지난 정권이 망쳐 놓은 타임오프를 바로잡는 데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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