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체인 아이슬란드 푸드는 연 매출 40조원이 넘는 거대기업이다. 2013년 이 업체 한 매장에서 58세 노동자 토니 홉킨스씨가 작업 도중 3미터 높이 천장 작업대에서 추락했다. 에어컨 및 공기 정화시설 관리를 위해 매장과 하도급 계약을 맺고 일하던 중이었다. 럭비를 좋아하고 사람 좋던 홉킨스씨는 매장 에어컨 필터를 교체하다 변을 당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치료 중 사망했다.

사고는 2013년 발생했는데, 사건에 대한 재판은 2017년 9월에 끝났다. 법원은 슈퍼마켓체인에 250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37억5천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사망 노동자가 천장에서 작업할 때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난간이나 안전대가 없었고, 천장 작업대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수행하지 않아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로 인해 이 회사는 지난해 영국 산업재해 벌금 액수 상위 2위 사업장이 됐다. 1위는 우리 돈 43억원의 벌금을 낸 건설회사, 3위는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철도회사였다. 모두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였는데 원청 회사들이 거액의 벌금형을 받았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은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감독활동을 정리하며, 안전보건법령 위반 확정판결 결과 부과된 연간 벌금 총액이 1천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매출에 비례해 벌금액을 산정하는 새로운 안전보건법 위반 판결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벌금액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잇따라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근로감독한 뒤 34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확인했고, 총 2천27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했다. 검찰로 송치된 건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영국처럼 과감한 벌금이 선고될 것 같지는 않다.

6명이 사망한 2013년 여수 대림산업 폭발사고에서 원청인 대림산업은 3천500만원의 벌금을, 같은해 5명이 아르곤 질식사고로 사망한 원청업체 현대제철은 5천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아이슬란드 푸드에서 하도급 노동자 1명이 사망한 데 대한 벌금의 100분의 1에 해당한다.

2016년 말 기준 대림산업 연 매출액은 9조8천억원이고, 현대제철 연 매출액은 16조6천억원이다. 아이슬란드 푸드보다 매출액이 적긴 하지만, 벌금이 100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은 너무 하지 않나. 사망자 숫자도 많고 사고 규모도 클뿐더러 하청노동자 사망이 계속 반복되는 회사들이다. 한국 사회가 산재 발생 기업, 특히 실질적으로 작업관리와 안전조치에 책임이 있는 원청 기업들에게 내리는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소에서 내놓은 ‘노동자가 갖춰야 할 안전보건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사업주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를 탓하기 전에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기업의 책임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동자가 조심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고, 안전문화를 만들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래야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다. 원청 기업들에게 솜방망이 수준도 안 되는 처벌이 내려지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부가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도 원청업체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획기적으로 산재 사망자수를 줄이려면, 획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원청 기업에 사고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력하게 묻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중대재해, 반복되는 사고, 막을 수 있었던 사고에 대해 원청 기업 자체와 그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안이 국회에 여러 건 제출돼 있다. 강력한 처벌은 재발방지를 위한 기업의 행동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