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5월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이야기를 꺼내자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 바삐 움직여 눈물을 훔쳤지만 흐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충돌한 그날, 그는 거기에 있었다. 몸 어느 곳 하나 다친 곳이 없었지만 사고 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2주에 한 번 병원을 찾는다. 얼마 전 TV에서 타워크레인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먹은 것을 토해 냈다. 길을 가다 크레인만 봐도 심장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휴대전화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는 사고로 마음의 병을 얻었다. 타워크레인에서 끊어진 와이어가 동료를 덮치는 것을 목격했다. 타워크레인 붐대(지지대)에 깔린 동료들의 “살려 달라”는 절규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아비규환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그의 삶은 그날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한 김은주(56·사진)씨 이야기다.

“끊어진 와이어가 동료 목을…”

22일 오전 서울 성동구 N신경정신과에서 만난 은주씨는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며 “사고 직후 폐인처럼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온 그의 손에는 2주치 약이 들려 있었다.

“오늘 약을 좀 더 강한 걸 넣었다네요.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아서…. 예전에 운전을 하다 오소리를 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한동안 운전을 못했습니다. 한데 사람이 죽는 걸 봤잖아요.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네요.”

지난해 5월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했다. 타워크레인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해양플랜트 제작현장을 덮쳤다. 휴게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모여 있던 노동자들이 참변을 당했다.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심하게 다쳤다. 은주씨가 삼성중공업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

은주씨는 그날 오후 휴식시간에 맞춰 화장실이 있는 3층 휴게실로 올라갔다.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침부터 굉장히 어수선했습니다. 원래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은 같이 움직이면 안 되는데…. 심지어 바람이 강하게 불었어요. 다른 현장에서는 바람이 세게 불면 작업을 멈추거든요. 골리앗크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안내방송 소리와 작업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어요. 옆 사람 말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니까요.”

노동자들에게는 오전 10시와 오후 3시, 하루에 두 번 10분간 휴게시간이 주어졌다. 휴게실 아래층에서 배관작업을 하던 은주씨는 오후 휴게시간에 맞춰 3층 휴게실로 올라갔다. 그때 어디선가 찢어지는 굉음이 들렸다. 고개를 든 순간 타워크레인 와이어가 찢어지며 휴게실 쪽으로 날아들었다. 와이어가 한 노동자의 목을 강타했다. 여기저기서 “살려 달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동료들과 함께 지지대를 들어 올려 보려 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사고에 놀라 내려가려던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휴게실로 올라오는 사람들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이 엉켜 계단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사람이 다쳤어요. 구급대원이 올라와야 하니까 계단 중앙을 비워 주세요’라고 소리치며 겨우 내려갔습니다. 구급대원이 오면 곧바로 사고현장으로 갈 수 있도록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았어요. 지금도 사고현장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날 이야기를 말로 꺼내기가 너무 두려워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요.”

“오전 휴게시간에 함께 장난친 동료 숨져”

은주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토해 내듯 말을 이어 갔고 문장과 문장 사이엔 침묵이 길어졌다.

“오전 휴게시간에 같이 물을 마신 동료가 죽었습니다. 휴게실에는 마실 물이 없고 자판기는 너무 멀리 있었어요. 우리 팀 동료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보온병에 물을 담아 갔는데 그 친구가 물을 좀 달라고 했거든요. ‘너 주면 우리 팀 못 마신다’고 장난을 쳤는데…. 그 장난을 치지 말 걸 그랬어요.”

은주씨는 그날의 모든 것이 후회스러운 듯 울었다. 그는 사고 후 잠시 다른 조선소에서 일하다 6월 삼성중공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출근 하루 만에 퇴사했다.

“작업하는 곳이 바로 사고현장 건너편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고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나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꼭 미친 사람 같았죠. 그때 기억이 없어요. 아는 동생이 당시 머물던 원룸에 와서 보고 ‘마음이 아픈 거 같다’며 병원에 가 보라고 권했습니다.”

“초기 미흡한 대응이 노동자 고통 키워”

▲ 정기훈 기자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는 사고 당일 일했던 노동자 1천100여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고와 관련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면 상담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은주씨는 경남근로자건강센터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같은해 11월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종합심리검사를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종합심리검사가 너무 비싸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제가 병원에 갔던 날에도 두 명이 왔다가 돌아갔어요. 신체를 다치는 것만 아픈 게 아니잖아요. 마음의 병도 병이라는 걸 노동자들이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잘 몰라요. 그래서 혼자 끙끙 앓는 거예요.”

종합심리검사 비용은 적게는 4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든다. 삼성중공업 사고의 경우 특진처리가 가능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아는 노동자들은 드물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는 “삼성중공업 사고는 초기 대응부터 잘못됐다”며 “사고 직후 심리치료전담팀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는데도 정부는 사고 한 달 뒤에야 트라우마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고 당일은 노동절이라서 하청업체 직원들만 일하고 있었다”며 “일당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적인 심리치료 프로그램과 고용·임금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주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우중공업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경기도 이천의 한 공장에서 배관작업을 하고 있다. 병원을 찾은 이날도 작업이 있었다. “약이 떨어져 병원을 와야 했다”고 했지만 사실 은주씨가 일을 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늘 고층에서 작업이 이뤄진다고 해서 못 갔어요. 사고 이후 높은 곳에 오르지를 못합니다. 크레인 사고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일어나지 않는 사고거든요.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들이 비용 절감과 노동자 임금착취에 신경 쓴 결과예요. 저는 노동자여서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오늘 인터뷰를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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