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첫 감옥살이 때였다. 1987년 가을이었다. 6월 항쟁으로 구속됐다. 서대문구치소였다. 교도관 감시 아래 홀로 좁다란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잠시 멈춰 고개를 들었다. 아~.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구치소 뒷산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청명한 가을하늘을 도화지 삼아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산에 오르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감옥이었다. 황홀해서 미치도록 답답했다.

두 번째 감옥에서 출소한 뒤였다. 1999년이고 그때도 가을이었다. 감옥살이 뒤치다꺼리로 힘들었던 가족의 심신을 달랠 겸, 아가의 추억을 쌓을 겸, 여행을 갔다. 자가용이 없던 터라,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즐겁게 걸었다. 내장사를 찾았다.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터널이 우리를 맞이했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두 살배기 딸내미는 땅에 떨어진 단풍잎을 주워 흔들며 신이 났다. 행복했고, 순간 미치도록 슬펐다. 전국을 떠돌며, 또 중동에서 8년이나 이 악물고 버티며 평생 건설노동자로 고생만 하다 먼저 간 아버지가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남몰래 하늘을 보며 길게 한숨 내쉬고 눈물을 감췄다.

나는 고작 감옥 안에서, 또 먼저 간 아버지가 생각나서,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이 미치도록 슬펐는데….

여기 우리 옆에,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가족들이다. 자식이 죽어 가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울부짖는 것 말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자들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세상에 없다. 그들은 지옥에서 자식을 잃었다. 그들은 석양의 붉은 노을에 황홀해하다 미치도록 슬플 것이다. 그들의 남은 가족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다 미치도록 슬퍼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 뚝뚝 흘릴 것이다.

국가가 죽였다. 정부가 죽였다.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던 사회가 죽였다. 그 사회에 파묻혀 온갖 참사에 무덤덤하던 우리가 공범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성찰하자고 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잊지 않겠다고. 함께하겠다고. 그리고 싸웠다. 국민 심장에 꾹꾹 쌓이던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는 마침내 탄핵촛불의 심장이 돼 활활 타올랐다. 결국 박근혜를 탄핵시켰고, 일당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악습은 사회 곳곳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의 약속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16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을 향해, 4·16재단이 출범한다. 재단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가족과 국민이 함께하는 공익적 성격의 민간 비영리재단이다. 잊지 않고 추모할 것이며, 가족과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며, 안전사회에 앞장설 것이며, 피해지역의 공동체 회복에 나설 것이며, 미래세대의 꿈이 펼쳐지도록 할 것이다. 재단은 3월10일 서울에서 각계각층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창립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은 4·16재단 설립을 위해 초기출연금 10억원 중 절반을 책임지기로 했다. 가족당 500만원을 결의했고, 1차로 144가족이 약정서를 쓰고 입금 중이다. 이미 7억원을 넘겨 목표를 초과했다. 2차 약정서를 모으는 중이다.

지난해 11월4일 출범한 ‘4·16재단 설립추진단’은 1인당 1만원의 100만명, 4·16기억위원, 그리고 개인·단체·노조·동아리·가족 등 단위당 100만원 이상의 국민발기인을 모으기로 했다. 명단은 향후에 조성될 생명·안전공원에 모두 새긴다.

지금 각 단체로 연대 요청서가 돌고 있다. 발기인과 기억위원 모집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가맹·산하로 공문이 발송됐다.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도 이미 공지했다. 국민발기인 모집은 2월20일까지인데, 5억원 목표를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발기인 모집 초입인데, 벌써 1억원이 약정됐다. 공공운수노조와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이 참여했고, 전태일재단과 박종철기념사업회도 함께했다. 필라델피아·자카르타·샌프란시스코·토론토·시애틀 등 해외에서도 참여했다. 참교육학부모회·국민TV전북협의회·한살림 경기남부·아이쿱·정의구현사제단 등 각계각층 단위가 이름을 올렸다. 인권·노동·시민 활동가들이, 또 전교조 활동가들이 개인으로 참여했다. 가족과 동아리로도 참여했다. 화가와 의사와 농민에 평범한 시민도 참여했다.

아름답고 따뜻한 연대, 서둘러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은 노동운동 연대의 상징이었던 전노협 창립 28주년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 4·16재단 설립추진단 : 김미현·김주영·김희중·박래군·박석운·백미순·신경림·심재명·신학철·안순호·윤정숙·이재호·이천환·이충재·이홍정·정강자·정연순·청화·한상균·한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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