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노조 등의 파업 타결로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은 수그러들었지만 정부의 대노조 강경 방침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파업의 전위에 섰던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간부 4명을 구속한 데 이어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와공공연맹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파업 레미콘 노동자에 대한 강제진압 등이신속하게 이어졌다. 이번 파업을 불법파업을 뿌리뽑는 계기로 삼겠다고 공언한검찰은 파업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지원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균형추 노릇해야 할 정부가

정부의 이런 대응은 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과 `만들어낸 여론'을 앞세운 일부언론들이 공권력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한 뒤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려를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사 양쪽의 균형추 노릇을 해야 할 정부가 사용자 쪽에 서서노동계를 압박하는 것으로 투영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은 현 정부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며정권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고 한국노총도 현정권의 한계를 드러냈다며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주장했다.

당장의 강경대응으로 이번 파업을 진정시킨다 해도, 이런 노정 대결 상태에선올가을 구조조정 과정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과격분규의배후세력'인 민주노총 지도부만 분쇄하면 노동계 투쟁의 예봉을 꺾을 수 있을것으로 판단하는 듯하지만 그렇게는 안될 것이란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가고립되면 될수록 투쟁은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서 이번 기회를 노동계를 압박하는계기가 아니라 노사관계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80년대 영국과 네덜란드는 모두 `영국병'과 `네덜란드병'으로 지칭되던경제위기를 극복해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선택한 길은 상당히 달랐다. 마거릿대처의 영국은 복지비의 철저한 삭감과 노동운동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통해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국민적 합의에 의한 위기돌파를 추구했다. 82년 `와세나르합의'라는 유명한 노사 대타협을 이뤄낸 루트 루베르스 당시 총리는 네덜란드노사합의의 바탕에는 `윈윈(win win)정신'이 있다고 설명했다. 패자를 만들어내는제도는 언젠가 파탄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므로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공통분모가각 당사자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루베르스 총리는 이 과정에서 노사가대등한 주체로 협상에 책임있게 임하도록 하는 데 정부의 중립적 입장이주효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시민사회가 보여준 성숙한 대응 역시 노사대화를추동한 힘이었다고 지적했다. 노사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는 대신 시민단체, 교회,학계 등 다양한 시민세력들이 각기 위기 극복에 대한 대토론을 전개하며 공통분모추출에 힘을 보탰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네덜란드는 계층적·계급적 갈등의 심화로 심각한 사회적분절현상을 겪은 영국과 달리 사회적 비용을 훨씬 덜 들이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있었다.

그렇잖아도 지역감정, 이념대립, 계층적 위화감의 심화로 사회적 통합에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가 어느 모델을 택할 것인가는 자명해 보인다.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어렵게 만들어놓은 노사정 합의의 틀을다시 복원해 노동문제를 물리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노력을 다시시작할 때다.

언론도 사용자쪽 편향 탈피를

정부는 사용자 편향의 강경대응 대신 균형감각을 회복하고, 사용자는 기업의투명성 부족 등 자체 개혁 부진에 의한 국제신인도 저하를 노동계의 파업 탓으로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동계도 쉽사리 투쟁으로 달려가지 말고 좀더 끈질기게대화노력을 펴야 한다. 또 여론 형성에 책임이 있는 언론은 `이 가뭄에파업이라니'와 같이 현실을 호도하는 선정성을 접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주장을균형있게 전함으로써 건전한 상식을 지닌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해노사정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