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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인정 회색지대, 더 넓은 사회보장 틀로 해결하자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탄광에서 일하던 분이 진폐증이 걸렸다면 이를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을 보였다면 이 역시 진단 문제를 제외하고는 직업병 인정 과정에서 쟁점이 크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요추부 추간판탈출증(소위 허리디스크)에 걸렸다면 이는 어떨까. 중량물을 취급했는지 여부, 허리 굽힘 작업의 정도 등을 살피는 조사가 이뤄지겠지만 이 역시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뇌혈관 심장질환·정신질환·암은 어떨까. 이러한 질병을 일으키는 직업적 원인 중 과로나 명백한 발암물질처럼 잘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뇌혈관 심장질환은 과로를 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고,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취약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암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해당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생길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고와 달리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업병 인정과 불인정 사이에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업무상질병은 엄격한 인과성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일정한 관련성이 있을 때 업무관련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관련성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소속된 사업장에 일하는 동안 생긴 모든 질병은 그 일과 관련이 있다. 이 정도의 관련성을 직업병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주장할 수도 있고, 발암물질 노출을 확인하고 관련 물질이 해당 암을 일으킨다는 기전이 밝혀져 있고, 관련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야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질병 원인을 정확히 찾는 일은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현재 산재 처리 과정에서 업무관련성을 입증하는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다. 막상 이런 질병이 걸린 노동자들에게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건강했던 노동자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나서 질병이 걸렸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에게는 업무관련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무엇이고, 얼마나 노출됐고, 그런 물질들이 발생한 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밝혀내라고 요구한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작업환경이 원인이 돼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질병이 생긴다면 빨리 치료받고 제대로 치료받고, 치료받는 것에 따른 비용 부담이 없거나 크지 않아야 하고, 치료받는 동안 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소득 보장이 되고, 충분히 치료받은 후에는 건강하게 원래 일하던 곳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것이 산재보험이건 건강보험이나 다른 사회보장이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직업병 보상제도 개선방향은 인정기준 문제에만 있지 않다. 많은 나라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건강보험을 통한 휴업급여 지급(일반질병으로 요양해도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도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중증질환에 대한 치료비 부담 줄이기) 역시 노동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산재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것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고 일반질병에 대해서도 휴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산재신청 자체가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더 보편적인 접근방법일 수 있다. 우리가 직업병이라고 생각하는 질병이 직업병 인정기준에서는 회색지대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질병은 어떤 부분은 직업병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현행 산재 제도는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회색지대 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를 나락으로 빠뜨린다. 그러기에 우리 고민을 산재보험에 한정하지 말고, 더 넓은 사회보장 틀에서 이러한 회색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모색하자.

김형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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