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17.12.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1. 사건의 경과

○○자동차 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원고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약 1년간 직속팀장에 의해 성희롱 피해를 받은 자다. 2013년 3월 담당 이사에게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담당이사가 사직을 권유하면서 공식신고를 만류했고, 피해 신고 후 사건조사를 담당하던 인사팀 직원의 발언 등에 의해 자신에 대한 허위소문이 유포됐다. 이에 원고는 성희롱 및 신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 등을 이유로 2013년 6월 직속 팀장과 담당이사·인사팀장·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원고는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서를 받는 과정에서 부하 직원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2013년 9월 견책징계를 받았다(이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위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원고는 2012년 1월부터 공통업무 없이 전문업무만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원고의 전문업무가 곧 축소되고 원고에게 엔지니어링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2013년 10월께 공통업무(서무업무)만 부여하겠다는 취지의 업무배치 통보를 받았다.

앞서 2013년 7월에는 원고에게 유리한 자료를 건네준 동료 직원(조력자)의 6개월치 근태를 소급적으로 조사한 결과 조력자가 정직징계를 받는 일이 있었다(이후 지노위와 중앙노동위는 조력자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고 회사의 재심판정취소 청구도 기각됐다. 항소심 진행 중 조력자가 회사와 합의해 소 취하로 종결됐다). 원고와 조력자에 대한 각 징계가 부당하다는 지노위 판정이 있고 나서 이틀 후에는 조력자가 회사 문서를 반출했다는 혐의로 직무정지 및 대기발령을 통보받았고, 조력자가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날 짐 싸는 것을 도와주던 원고 또한 며칠 후 직무정지 및 대기발령 통보를 받고 회사로부터 절도방조죄로 고소당했다(조력자도 절도죄로 고소당해 기소유예처분을 받았으나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취소하는 결정을 했고, 원고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원고는 ① 조력자에 대한 정직처분 ② 원고에 대한 견책처분 ③ 원고에 대한 업무배치 통보 ④ 원고에 대한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등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에서 금지하는 ‘불리한 조치’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추가했다.

2. 소송의 경과

1심 법원은 직속 팀장에 대한 청구에 대해서는 직속 팀장의 행위가 직장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으나, 회사의 사용자 책임 등 나머지 피고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이후 원고는 회사에 대한 청구 부분에만 항소했고, 직속 팀장에 대한 청구 부분은 직속 팀장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항소심 이후부터는 회사의 책임 부분에 집중해 공방이 이뤄졌다.

항소심 법원은 1심 판결과 달리 직속 팀장의 성희롱에 대한 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다만 직속 팀장의 변제가 인정돼 이 부분 청구는 최종적으로 기각됐다). 원고의 소 제기 이후 발생했던 불이익 조치 중 ③ 원고에 대한 업무배치 통보에 관해서만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에 위반한 불리한 조치라며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성희롱 관련 조사업무를 담당하던 인사팀 직원의 발언과 관련해서도 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

원고는 원심에서 배척된 위 ①②④ 청구 부분에 대해 상고했고, 회사는 피고 패소 부분에 대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원고가 상고한 부분을 모두 파기환송하고, 피고의 상고는 기각했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는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의 입법취지를 판시하면서 “사업주의 조치가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서 위법한 것인지 여부는 불리한 조치가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를 한 경위와 과정, 불리한 조치를 하면서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피해근로자 등의 문제제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인지, 피해근로자 등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 침해 정도와 불리한 조치로 피해근로자 등이 입은 불이익 정도,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해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불리한 조치에 대해 피해근로자 등이 구제신청 등을 한 경우에는 그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그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남녀고용평등법에 관련 분쟁 해결에서 사업주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는 규정(30조)을 두고 있음을 근거로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 관련성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점에 대해 사업주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에 따라 ② 원고에 대한 견책처분 ④ 원고에 대한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등이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독 원고에 대해서만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된 점과 해당 조치와 관련된 분쟁의 경과가 주요한 근거로 설시됐다.

한편 피해근로자 등을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을 직접 위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 원심의 판결을 긍정하면서도,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 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면 사업주는 민법 750조에 따라 불법행위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이러한 손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데, 예견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사업주가 도움을 준 동료 근로자에 대한 징계처분 등을 한 경위와 동기, 피해근로자 등이 성희롱 피해에 대한 이의제기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행위를 한 시점과 사업주가 징계처분 등을 한 시점 사이의 근접성, 사업주 행위로 피해근로자 등에게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는 불이익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 조력자에 대한 정직처분의 경우 원고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회사가 차별적이고 부당한 처분을 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예견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회사가 상고한 인사팀 직원의 발언에 대한 사용자 책임 부분에 관해서는, 직장내 성희롱 사건의 조사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비밀을 지키고 공정성을 잃지 않아야 할 의무를 저버린 위법한 행위라며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4. 판결의 의의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에서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한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고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지만, 이 조항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이 조항이 언급된 판결이 매우 드물다. 현실에서 성희롱 피해자는 필요한 보호조치는 받지 못한 채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다 결국 퇴사로 몰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현실에서 위 판결은 남녀고용평등법 14조2항의 입법취지·판단기준·증명책임에 관해 최초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직장내 성희롱 이후 피해자 또는 그를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구제절차를 단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 현실에서 왜 성희롱 피해자 대부분이 자신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는지를 인식하고 있는 판결이라 보인다. 그러한 인식하에 회사가 명목상으로 드는 불리한 조치의 사유를 형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내 성희롱 이후 사건 경과를 연속적으로 바라보면서 불리한 조치가 이뤄지게 된 경위와 동기의 실질을 살펴 사안에 대한 판단을 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한편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조사 참여자의 비밀누설 금지의무를 규정하게 됐으나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는데 헌법 규정, 남녀고용평등법 입법취지 등을 들어 조사 참여자의 비밀유지의무를 인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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