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최저임금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1389년 영국의 노동자조례(Statutes of Labourers)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한데, 식량물가에 맞춰 임금을 보장해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한 노동자조례를 한 꺼풀 걷어 보면 최저임금의 역설과 만나게 된다.

14세기 검은 죽음(黑死病)이라 불리는 페스트가 유럽을 뒤흔들면서 3년여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했다. 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는 인건비 상승을 가져왔고 농민들은 더 높은 급료를 주는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농노제 폐지를 견인했다. 여성과 아동의 신분 상승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에 대한 재산상속을 허용하기도 했다.

인구 대비 풍부한 자원과 방대한 토지는 고기와 유제품 소비를 증가시켰고 농민들에게도 풍요의 기회가 주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왕들은 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동유럽에서는 사치금지법을 만들어 농민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제한하고 상류계층 의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

1349년 영국은 노동자칙령(Ordinance of Labourers)을 만들어 노동자 거주이전을 제한했다. 영주들이 이동하려는 노동자를 투옥시킬 수 있었고 1351년 노동자조례를 제정해 국왕이 정한 최대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시대를 역행하는 이러한 조치는 자원 배분의 불균형을 강제로 막으려 했기 때문에 1358년 프랑스 자크리의 난, 1381년 영국 와트 테일러의 난 등 농민봉기를 불러왔다. 결국은 1389년 노동자 부의 배분을 가로막는 제도가 아니라 최저임금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노동자조례를 변모시키게 된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최저임금의 시초는 임금이란 절대적으로 정해진 노동가치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생산에 대한 배분을 위한 투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2000년 이후 노동생산성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기업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여년간 꾸준히 감소해 왔다. 임원 1인의 평균보수가 10억원이 넘는데도 직원 1인의 평균임금은 6천만원이다. 전체 임금노동자는 3천만원이 되지 않고 비정규 노동자는 2천만원을 가져가지 못한다. 배분의 불균형을 조정하려면 기저층 임금수준을 정상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최저임금의 역사는 자원배분 불균형을 푸는 첫 단추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기저 임금수준을 정상화하려면 연쇄적으로 원·하청 불공정거래 관행을 조정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동하도록 사회적 연대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보수일간지들은 연일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접겠다거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해고시킬 수밖에 없다는 글을 퍼 나르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비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자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경비노동자 해고를 막아 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기업이 나서 중소기업과 계약조정을 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보수일간지들은 대기업의 과도한 이윤독점, 중소·영세 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대기업의 이익조정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2018년 1월16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시행은 7월부터다. 하도급법 16조의2(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의 조정)와 관련해 원재료 가격변동시에만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돼 있던 것이 “공급원가 변동”시에도 가능하게 됐다. 최저임금 인상 같은 원가변동 원인을 이유로 하도급대금 조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하도급법 18조(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에서 원사업자의 부당한 경영간섭 금지 사유를 세분화했다. 하도급 거래량을 조정하는 지배·개입뿐 아니라 특정 사업자와의 거래하도록 구속하거나 원가공개 등 과도한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동법 19조(보복조치의 금지)는 원사업자의 불공정거래 등 관계기관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하도급업체에 보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보복행위시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받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도록 했다.

하도급법 24조의6(조정조서의 작성과 그 효력)은 조정조서 작성근거 및 법적 효력을 분명히 했다.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 권한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원·하청 분쟁조정을 위한 제도를 정비했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다. 이제 을들의 이간질을 넘어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고 자원배분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