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영화 <1987>이 개봉하면서 1987년 민주화투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6월 항쟁이 일어날 때까지의 상황을 보여주고 끝난다. 실제 역사는 6월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치열한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높지 않다.

6월 항쟁이 6·29 선언을 끌어낸 결과 자유의 공간이 열렸고 이를 계기로 진짜 삶을 바꾸는 싸움이 시작됐는데 그것이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6월 항쟁에 참여한 국민 절대 다수의 지위는 노동자였다. 이들이 ‘정치교체’를 넘어 ‘사회교체’에 나선 것이다. 87년 7월5일 현대엔진을 시작으로 민주노조건설 투쟁은 3개월 동안 그야말로 기름 부은 들불처럼 이어졌다. 4천여개의 민주노조와 170만명의 조합원 조직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냈다. 90% 이상의 노동조합이 이 3개월 동안 만들어졌다. 3천여건 이상의 노동자 대투쟁 동안 연인원 20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어나 거리로 뛰쳐나왔다. 희생자 규모도 엄청났는데 구속자는 2천여명, 해고자는 5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대표적 구호는 "우리도 사람이다" "노조설립 인정하라" "최소임금 보장하라" 등이었다. 경제민주화 투쟁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가 크게 개선됐고 노동자단체와 회사가 마주 앉아 대화로 문제를 협상하게 됐으며 임금 및 복리후생이 향상했다. 6월 항쟁이 정치민주화라는 ‘형식’을 만들었다면, 7·8·9 노동자 대투쟁은 경제민주화라는 ‘내용’을 채워 넣었다.

2017년 촛불혁명은 87년 민주화투쟁과 연결된다. 그 열망과 규모는 오히려 진화한 듯하다. 촛불집회 당시 국민 요구는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었다. 2016~2017년 촛불의 도화선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였다. 국민은 세월호 진상조사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규명, 국정교과서 철회를 요구했다. 농민은 쌀값 현실화를 비롯한 생존권 구호를,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 같은 노동조건 개선 구호를 크게 외쳤다.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돌아가셨다. 박근혜 정권은 당시 폭력사태를 유발한 책임이 집회 주최자인 민주노총에 있다며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했다. 민중총궐기 투쟁이 불러온 사회적 물결은 대단했다. 그 이후에도 민주노총을 위시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거의 매주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집회 흐름은 자연스럽게 전 국민적인 촛불집회로 나아갔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키기에 이른 2017년 촛불의 힘이었다. 그런데 촛불 불씨를 놓고 누구보다 앞장섰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상균 위원장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2017년 연말 문재인 대통령은 무려 6천444명을 특별사면했다. 한상균은 제외됐다. 문재인 정부를 탓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아직 노동운동 역량과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적 요구 또는 호의가 충분치 않다는 비판도 일견 타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상균이 사면되지 못하고, 2017년 촛불의 열기가 내 삶을 바꾸는 노동운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개개인 모든 국민의 탓이다.

올해를 시작으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자 경영자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최대 규모 사학재단 연세대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재정이 어려워졌다며 청소노동자를 3시간짜리 초단기 알바로 전환하고 경비노동자를 3교대에서 24시간 맞교대로 바꿔 인원을 감축한다. 고려대·홍익대도 같은 이유를 들어 비슷한 내용으로 청소·경비노동자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연세대 적립금은 5천209억원, 고려대는 3천437억원, 홍익대는 7천172억원이다. 우리는 여전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회를 도처에서 용인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인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이 추운 날 거리에서 외롭고도 끈질기게 싸우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가 됐으니 이제 사회적폐를 해소하자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 수장들과 국가기관이 행한 적폐들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 우리도 구경하고 응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일상 영역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요구하는 일들 말이다. 이를 시민운동 혹은 노동운동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들어내야 할 우리 사회 적폐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아닐까. 결국 아래로부터의 경제민주화투쟁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차별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부당노동행위 엄벌, 생활임금 확보. 이런 구체적 요구가 실현돼야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우리 소시민들의 삶이 진짜로 나아진다. 촛불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 끝나서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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