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분위기가 움트고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겠다”고 밝힌 이튿날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한국노총과 재계는 참여 의사를 밝혔다. 99년 2월 이후 노사정위는 쳐다보지도 않던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에는 호의적이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어떤 의제를 논의해야 할지 노·사·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새로운 대화 틀 만드는 데 함께해야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발표를 보면 노사정위에 참여해서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구 개편방안을 같이 논의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사회적 대화기구를 어떻게 만들지 노사정이 모여 이야기하자는 제안에 노동계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최근 정부 움직임을 보면 정부가 앞장서 노동계나 사용자를 끌고 가려는 생각은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백지에서 어떤 형태의 집을 지을지 먼저 이야기하고 나면 어떻게 사람을 구성할지와 어떤 의제를 올릴지는 뒤따르는 이슈가 될 것이다.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과거 정부가 노사정위를 이용해 정부 정책을 강요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한 상태이고, 새로운 대화 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정이 머리를 서둘러 맞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 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나 노동시장이 가진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한다. 시작단계에 참여하면 상당한 지분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민주노총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논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고, 임금도 많이 오르지 않고, 그래서 임금교섭이 점점 덜 중요해지고, 노동자는 고령화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사정은 고민을 같이해야 한다.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면서 일·생활 균형, 즉 노동시간단축도 고민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 늙어서도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회 복지도 강화해야 한다. 노사정 앞에 놓인 과제가 적지 않다.

사회적대화 복원 신뢰가 중요하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24일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해 사회적 대화의 정상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문성현 위원장의 제안은 지난해 9월26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를 위해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안한 데 따른 화답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노동현안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니 노사정위원장의 제안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한국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당사자로서 사회적 대화 재개를 위한 노사정위원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 복원을 제안하면서 왜 사회적 대화가 지금처럼 노동계로부터 불신을 받고 파탄에 이르게 되었는지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과연 지금의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노총은 지난 10일 열린 산별대표자회의에서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는 참석하되,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 복귀 문제는 추후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결정하기로 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장이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 등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갖자고 제안한 데 대해 한국노총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지금 파탄 난 사회적 대화가 정상적으로 복원되기 위해서는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전 정권의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와 부당한 지침 강행,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 강요가 사회적 대화를 파탄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여당과 정부가 대선 때 약속을 뒤집고 노동시간단축 관련 근기법을 개악한다든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할 경우 사회적 대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어그러질 것이다.

내부 토론·논의, 불가피하고 거쳐야 할 공정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그동안 노사정위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해 온 오명은 물론 정부와 경제·사회·노동부문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대등한 협의기구가 아니었고,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기구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기존 노사정위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의 위원 구성·의제·운영방식, 심지어 명칭까지 포함하여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한 입장을 밝힌 것은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열린 자세와 입장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심이 ‘언제 만나냐’에만 집중되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될 경우 또다시 실패한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수면 위로 올라온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에는 노사정위에 대한 오래된 불신이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다양한 의견과 이견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라도 민주노총 내부의 적극적인 토론과 논의는 불가피하고 거쳐야 할 공정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편에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에는 근로기준법 개악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을 정부·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행보는 노정관계 악화는 물론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대한 불신만 높이게 될 것이다. 정부가 자충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노총은 단지 제안에 대한 찬반입장이 아니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내부의 이견을 좁히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로 입장과 계획을 밝힐 계획이다.

무리한 합의보다 소통·협의 기구로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개별 기업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어야 할 현안들이 많다는 점에는 모두가 인식을 같이할 것이다. 이러한 현안의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의 양보와 협력에 바탕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제안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노·사·정은 어렵더라도 타협을 통해 현안 해결을 모색했다. 오랫동안 중단됐던 사회적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의제 선정부터 신중해야 한다. 구체적인 제도의 설정이나 개선에 관한 사항은 정부와 정치권에 맡기고, 큰 틀에서 의제를 선정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노사 간 의견 대립이 큰 사항을 의제로 선정하는 것은 오히려 노사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적 대화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의제에 대해 무리하게 합의를 시도하기보다는 ‘소통·협의’ 기구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사회적 대화가 파행되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청년일자리 창출 등의 해결 여부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사회적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노·사·정 모두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효성이 있는 사회적 대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양보와 고통 분담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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