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연초부터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의 최저임금 비판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문제가 많다. 이들이 최저임금 비판의 핵심 근거로 내세우는 세 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 최저임금이 물가만 상승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생산성 증가 없는 비용 상승은 상품가격으로 전가된다는 경제학의 고리타분한 이론이 근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경제의 최대 현안은 지나치게 낮은 물가상승률이다. 화폐가치가 상승하면서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보다 현금만 쌓고 있다. 물가하락(또는 낮은 상승)은 보통 불황과 경기침체의 징표로 간주된다.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2016년 1%, 2017년 1.9%에 불과했다. 물가상승보다는 하락이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물가가 실제 상승되는지도 쟁점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심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일인 것이다.

둘째,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시장의 균형임금보다 임금을 강제로 높이면 노동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 실업이 발생한다는 경제학의 균형 도그마가 근거다. 보수언론들은 경비·청소·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을 전하며 실제 경제학 이론대로 현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을 좀 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한계사업체들을 퇴출시켜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서나 기업 이익에서나 득이라는 것이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바였다. 보통 임대료도 감당 못하는 기업들을 한계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사회·도덕적 노동임대료라 할 최저임금도 감당 못하는 사업체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한계기업들과 다르지 않다. 즉 보수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일자리 감소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의 빠른 시장 퇴출을 주장해야 옳다.

셋째, 최저임금 사업장이 주로 자영업 종사자들과 영세기업 노동자임을 근거로 최저임금이 ‘을’끼리의 분배 다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 비판 역시 틀렸다. 이들은 한국 경제성장사를 의도적으로 망각한 비판이다. 우리나라의 1960~1980년대 수출 전략은 내수 희생을 통해 수출 대기업이 비용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저가의 내수 서비스업들 덕분에 수출 대기업들은 많은 기업이윤 증가에도 불구하고 임금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며 투자를 늘릴 수 있었다. 삼성·현대차 등은 모두 이런 역사적인 저임금 경제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수 서비스부문은 수출 대기업 성장 이후에도 저임금 상태를 개선하지 못했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해고자들이 영세 자영업자가 되면서 서비스산업에 공급과잉이 발생했고, 낮은 조직률로 인해 노동조합이 임금 기준을 높이지도 못했다. 수출 대기업의 이윤이 내수로 흐르는 낙수효과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소멸해 버린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자영업과 내수 서비스 노동자에 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은 수출부문으로 치우진 역사적인 소득분배를 재조정하는 정책 중 하나다.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을’끼리의 싸움이라고 비아냥댈 것이 아니라 내수 저임금 혜택을 얻은 수출부문의 부와 소득분배를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최저임금 인상 비판자들의 주장이 이렇게 문제가 많다고 해서 정부의 최저임금 주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이라고 했는데, 최저임금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성장변수인 임금분배율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소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재산소득이 줄어야 임금소득이 증가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재산소득은 별로 건드리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는 재산소득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없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후속대책으로 건물주들에게 임대료 인하를 압박하는 것에서도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저임금 문제의 핵심에는 모든 경제 분야에 만연해 있는 지대 추구적 제도들이 있다. 건물주의 나라라고 불리는 부동산공화국, 정규직 일자리가 재산이 되는 분단노동시장, 법 위에 있는 재벌 등이 그런 제도들이다. 불로소득과 지대로 돈 버는 나라에서 최저임금 조금 오른다고 소득분배율이 변할 리 없다.

현재의 최저임금 논쟁은 경제구조 변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거품이 많은 논쟁이다. 앞서 본 것처럼 보수세력은 경제학의 도그마 속에서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맞지 않는 이야기를 우겨 대고 있고 정부는 실제 경제를 변화시키는 핵심보다 인기영합적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경제성장 방식과 기업 경영의 관행을 바꾸는 것은 공동체 내 힘 관계에 상당 부분 의지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노조 조직률과 초기업적이며 평등주의적인 단체교섭은 노동자가 힘을 키우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노동운동은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 논쟁을 비판하면서 2018년의 노동 쟁점을 ‘노동조합’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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