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선영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10.13. 선고 2017누41988 판결

사건의 개요

2013년 1월28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유독가스인 불산이 누출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화성사업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하고 총 2천4건(삼성전자 1천934건, 협력업체 70건)의 법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이후 특별감독의 연장선상에서 기흥·화성사업장 종합진단을 실시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공장 인근 지역주민,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연구해 온 전문가 등은 노동부에 위 감독 결과를 담은 보고서(특별감독보고서·종합진단보고서)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상 정보가 감독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보고서 전부를 비공개했다. 이 비공개 처분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특별감독보고서의 경우 대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종합진단보고서에 대해서는 사기업은 공익법인에 비해 비공개로 인한 정당한 이익의 존재를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고 특히 삼성전자 기흥·화성사업장은 산업기술 유출방지 등을 위해 일반 사기업에 비해 영업비밀을 보다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정보를 비공개 대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국민의 생명·신체 관련 정보에 대한 알권리가 기업의 영업상 비밀보다 앞선다고 하면서 1심에서 비공개로 판단한 대부분이 공개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2심 판결은 피고가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2. 2심 판결의 요지

(1) 재해근로자, 지역주민, 직업병 예방 시민운동가들은 알권리를 보장받을 이익이 있다.

법원은 이 사건 보고서는 소속 근로자 및 지역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내지 건강과 관련한 정보이기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에 관해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이익을 가진다고 봤다. 또한 다른 사업장에서 재해를 입은 근로자라 하더라도 같은 회사에서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장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소속 근로자와 동일하게 알권리를 보장받는다고 했다.

(2)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이 특별감독행정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인다.

노동부는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향후 감독·진단 담당자가 의사형성에 부담을 가져서 자유로운 의사 개진에 지장을 받고, 피감독 사업주가 공개에 부담을 느껴서 적극적인 자료 제출이나 협조를 꺼리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감독 공무원이나 안전진단 담당자는 공개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수행한 감독의 결과를 정확하게 보고할 직무상 책임을 부담한다는 점, 피감독 사업주가 협조를 꺼리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감독에 임할 수밖에 없는 점, 근무하는 사업장의 안전실태에 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근로자들은 안전진단시 자발적 협조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보고서가 공개된다고 해서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객관적으로 현저하게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보가 공개돼 감독행정을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을 때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다고 봤다.

(3) 생명·신체 또는 건강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정보는 삼성전자의 영업·경영상 이익에 앞선다.

법원은 종합진단보고서에 있는 화학물질, 협력업체 관련 사항 정보는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의 진단보고서는 사고를 계기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 및 지역주민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을 제외한, 공개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알권리가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대한 이익에 앞선다고 했다.

(4) 협력업체 관련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도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이익에 앞선다.

이 소송에서 노동부는 진단보고서에 포함돼 있는 협력업체 정보의 영업비밀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수준의 반도체 업체로 성장한 데에는 우수한 협력업체와의 협업이 있었기 때문인데 대부분 협렵업체들이 삼성전자와의 거래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는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 등이 이유였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 정보에 대해 일정한 경영상 이익이 있는 것으로는 봤으나 협력업체에서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련 사항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의 문제는 근로자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정보에 대한 국민 알권리가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이익을 앞서는 것으로 판단했다.

3. 판결의 의미

기업의 영업비밀 주장은 만병통치약이었다. 정부는 기업 주장이 정당한지 전혀 판단을 하지 않고 국민 알권리 보장 요구에 대해 전면 비공개로 답했다. 또한 산업재해 소송에서 안전관련 정보를 요구하면 정보공개를 통해서 받으라고 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정보공개를 통해 받지 말고 관련 소송에서 증거조사를 통해 받으라고 했다. 이렇게 ‘핑퐁’처럼 알리바이를 주고받는 동안 산재 피해자들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서는 기업의 경영상 비밀 사항이라도 생명·신체 건강과 관련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음에도 현실에서는 기업의 영업상 비밀만이 보호될 뿐 생명 등에 관련한 정보인지는 검토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상 판결은 생명·신체 또는 건강 보호와 관련한 정보에 대한 알권리는 기업의 경영·영업상 이익에 앞선다는 원칙을 명시적이고 실질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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