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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과 노동운동
   
 

‘거위의 꿈’ 노래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나는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주장이, 세상은 끝이 정해져 있다고 믿으면서 사회에 벽을 세우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현실 속의 기회는 평등할 수 없다. 자본가냐 노동자냐, 부자냐 빈자냐, 도시 출신이냐 농촌 출신이냐,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남성이냐 여성이냐, (요즘 들어서는) 서울이냐 비서울이냐,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고지능자냐 저지능자냐에 따라 출발선에서 차이가 나고, 기회 값도 달라진다.

신분 상승 사다리로 여겨지는 교육도 기회의 평등과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세대가 거듭될수록 고소득자는 고학력자가 되고, 저소득자는 저학력자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의 평등이라 착각하는 공무원시험 응시기회도 개인이 처한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시험 통과 여부와 기회의 평등 여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진입 단계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경쟁'을 '기회의 평등'으로 착각하는 이들의 문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과정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은 ‘과정의 차별’과 ‘결과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성향이 크고, 세상은 끝이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차별과 격차를 구조화하는 데 동조한다.

평등은 사회 생활과 직장 생활의 출발선에서만 중요한 덕목이 아니다. 평등은 사회 생활과 직장 생활의 도상과 과정, 그리고 종착점에서도 지속적으로 중요한 가치다. 평등은 '기회-과정-결과'의 모든 여정을 관통하는,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의 하나로, 자유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양 날개를 이룬다.

요즘 회자되는 ‘기회의 평등’이란 말의 이면에는 기회만 ‘평등’하면 ‘과정의 차별’과 ‘결과의 격차’는 용인해야 한다는 반문명적·반민주적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과정과 결과가 불평등한데, 기회가 평등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의 실존에서 '과거-현재-미래'가 상호 연관돼 통일적으로 존재하듯이, 노동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명멸하는 직업(jobs)의 '기회-과정-결과'도 서로 불가분 관계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공존한다. 이는 출발이 불평등하더라도, 과정에의 개입과 결과에 대한 시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평등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뜻한다.

기회를 과정과 결과로부터 분리시킨 채, 고립되고 단절된 무엇으로 가정하는 분열적 사고방식으로는 현대 사회의 노동세계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래에도 인간의 노동이 핵심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직업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난제를 풀어 가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접근법과 통합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이른바 인더스트리 4.0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종합적·입체적·전체적 통찰력의 소유자이지, 단편적·단면적·부분적 지식의 소유자는 아니다.

십 대 후반에 일류대학에 합격했다고 평생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없듯, 이삼십 대에 소수만 뽑는 시험에 합격했다고 평생 우대를 누리며 살 순 없다.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지식 소유 여부를 파악하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천적 특권을 인정하고 구조화된 격차와 차별을 허용하는 사회는 문명화된 민주사회가 아니다.

사람들이 ‘기회의 평등’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이유로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의 과잉과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부재, 기업복지(enterprise welfare)의 과잉과 사회복지(social welfare)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국가를 통해 이뤄지는 노동자를 위한 고용과 생활보장 제도는 부재하거나 부실한 데 반해 경제활동 주력군인 기업은 자본가와 주주(몇몇 경우에 자기 종업원)만의 이익만을 위해 기능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국가와 기업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사회를 조화로운 삶과 연대의 터전으로 여기기보다 약육강식의 장으로 오해하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실현하고 사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게 된다. 능력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기회의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지대(rent)와 특권의 배타적 추구 분위기는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 구조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기회의 평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기회의 평등 이데올로기는 ‘강한 개인’ 이데올로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강한 개인은 연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연대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가치이자 덕목이다. 국가를 통제할 능력과 사회를 지배할 자원을 보유한 ‘강한 개인’은 사회적 보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약한 개인’은 단결과 결사를 통한 집단적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볼 때 사회적 약자들의 대표적 결사체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운동은 무엇보다 ‘결과의 평등’을 개선함으로써 ‘과정의 평등’을 구축하려 했고, 이를 통해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려 했다. 노동조합운동은 집단 연대를 통해 ‘고립적 자립’을 ‘사회적 자립’으로 확장하고, 계급 단결을 통해 ‘개인적 자유’를 ‘사회적 자유’로 승격시키려 노력했다.

이 지점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여러 가지 문제와 한계에도)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유’ 추진세력이자 ‘복지국가’ 지지자로 기능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소임을 묵묵히 감당했다.

새해 들어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적 대화와 산별교섭이 나아갈 지향점과 맞물려 사회경제적 평등 실현은 한국 노동운동이 지향할 이념적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industriallyoon@gmail.com)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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