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7천530원이 적용되자 언론들이 앞다퉈 ‘그늘’을 조명한다. 물가는 오르고, 폐업은 늘고, 일자리는 줄어든단다. 이를테면 폐점한 편의점이 지난해 11월까지 최대 169개, 최저 124개였는데 12월에는 203개로 늘어난 것을 두고도 ‘최저임금 직격탄’이라고 분석한다. 이러다 길고 긴 한파도 최저임금 탓이라 할까 걱정이다. 여기에 정부에서 최저임금제도 개편 얘기를 흘러나오니 현장에는 각종 편법이 범람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장담 못할 상황이 됐다. 최저임금 변동의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상여금 곶감 빼먹듯 기본급에 넣고 있다
백선진 명화공업노조 안산지부장

백선진 명화공업노조 안산지부장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과거 법원 판결을 보면 정기상여금은 포상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포상적 성격으로 주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논리다.

일부 기업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는 것으로 무력화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안산지역 기업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니 상여금 600% 중 200%를 12개월로 분할해 기본급에 넣기도 했다. 또 다른 사업장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상여금 600%를 200%씩 매년 기본급화하다 올해 상여금을 아예 없앴다.

결국 기업들은 상여금을 기본급에 넣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발목 잡으려 한다. 곶감 빼먹듯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지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금원이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당연히 최저임금도 올라야 한다. 산입범위를 조정해 인상 폭을 줄이면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약속한 최저임금 1만원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최저임금 제도개선이 올바른 방향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무시간·사람 줄여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하는 대학들
최다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

최다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

“고용형태 : 계약직(기간 12개월), 직무내용 : 건물관리·청소, 근무시간 : 07시~11시(주 5일), 급여 : 679,350원.” 연세대학교 건물관리 용역업체가 낸 청소노동자 모집 공고 중 일부다. 건물이 새로 지어질 때마다 해당 건물 청소노동자를 단시간 노동자, 즉 알바로 채용하기 시작한 연세대가 올해부터는 기존 청소노동자 정년퇴직 결원까지 알바로 채운다고 한다. 현장에는 “내년엔 우리 건물도 알바로 쓴다더라” “11명 근무하는 관을 5명으로 줄인다더라”는 구조조정 소문이 파다하다.

연세대는 “학교에 돈이 없는데 비정규직 임금은 계속 올라서 힘들다”고 한다. 노동조합 없던 시절에 청소·경비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연차휴가는 공휴일로 대체돼 수당은커녕 자유롭게 쉬지도 못했고 토요일에도 일했지만 연장수당은 없었다. 월급 70만원에 모든 게 녹아 있었던 것이다. 노조를 만들고 10년을 투쟁해 임금이 꽤 올랐지만 청소·경비노동자의 임금은 그래도 여전히 최저임금 영향권 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그 누구보다도 환영했다. 그런데 연세대는 시간과 사람을 줄이는 구조조정으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를 시도한다. 또 최저임금을 받지 않는 이들이 이야기한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어야 한다고. 말 그대로 다 녹여 내서 인상 효과가 없어지게 하자는 것이다. 적립금 수천억원을 쌓아 놓고 “돈 없다”고 말하는 대학에 맞서서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새해 벽두부터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언제쯤 대학은 비용 아닌 사람을 보게 될까.


상여금 포함되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 없어져
박선영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부위원장

박선영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부위원장

10년째 캐셔로 일하고 있다. 마트노동자는 최저임금에 준해 임금을 받는다.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임금이 같다. 이마트 현장노동자는 지난해 기본급 66만2천원에, 직무능력급이라 이름 붙인 임금 61만원가량을 더해 한 달 145만원 정도를 받았다. 그해 최저임금은 2016년에 비해 7.3% 올라 시급 6천470원이었다. 당연히 우리 임금도 7% 수준으로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는 상여금 200%를 기본급에 산입시켜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했다. 실질임금 인상은 2% 수준에 그쳤다. 회사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교섭대표노조가 동의해 줬다.

올해도 남아 있는 상여금 200%를 기본급에 산입시킬 줄 알았는데, 방법을 달리했다.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여 버린 것이다. 새해부터 8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7시간 내에 처리하기 위해 전국 이마트 점포의 노동자들은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하고 있다. 캐셔는 옆 동료 얼굴 볼 겨를도 없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됐을 때 월급 209만원을 보장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지만 답변이 없다. 이대로 월 183시간에 맞춰 내년과 내후년 임금이 정해질 경우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에 비해 마트산업 임금은 현저하게 낮게 된다. 단시간 저임금 일자리를 양성하는 것이 최저임금 1만원에 담긴 시대정신은 아닐 것이다. 최근 정부와 경제인·전문가라는 이들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두고 논의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상여금과 식대·교통비를 최저임금에 녹이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항목이 포함되면 마트노동자는 최저임금이 올라도 총액임금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마트노동자 만큼 받고도 가정을 꾸리며 살 수 있는가.


산입범위 확대 중단하고 최저임금위원 여성 비율 높여라
안현정 여성노조 사무처장

안현정 여성노조 사무처장

2018년 최저임금이 시급 7천530원으로 인상됐다.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을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최근 상여금 등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움직임과 휴게시간 늘리기 같은 편법 우려가 현실이 됐다.

최저임금은 학교비정규직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임금 산정시간을 운운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학교비정규직들에게 떠넘기려 했다. 15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과 릴레이 밤샘 교섭 등으로 최저임금 미달 금액 보전에 합의해 사측의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꼼수를 막아냈다.

끈질긴 투쟁으로 상여금·명절휴가비 등 조금씩 노동조건이 나아지고 있는 지금, 최저임금에 상여금 등을 포함시키겠다는 건 대다수가 여성이자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임에도 저임금인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여성 비율을 높이고 여성 비정규직들의 참여를 보장해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최저임금 미달하는 수가 책정한 정부
고미숙 전국활동보조인노조 조직국장

고미숙 전국활동보조인노조 조직국장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시기마다 정부에 최소한 최저임금 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수가를 책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되는 수가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편이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부터 수가와 최저임금이 비슷해졌고 2016년부터 역전됐다.

올해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부분이 장애인활동지원수가였다. 수가에서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75% 이상이고, 나머지는 중계기관 수수료다. 올해 최저시급에 맞춰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시급을 역산하고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올해 수가는 1만2천700원 이상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정한 수가는 1만760원이다.

최저임금도 지급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정부가 수가를 결정한 것이다. 이러니 기관들의 꼼수가 나온다. 활동보조인들에게 체불임금 포기각서를 받고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월 60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늘리려 한다. 여기에 반발하는 활동보조인은 계약해지를 당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도개선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적정한 수가 책정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