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성과로의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야간·교대노동이나 유해환경 작업 같은 질적인 요소를 고려하도록 산업재해 인정기준 관련 고시를 개정했다. 그런데 과로 판단 기준시간은 그대로 둬 "과로사회를 방치하는 고시"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28일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산재 인정기준) 고시 개정안을 29일 공고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행 산재 인정기준은 질병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간 주당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발병 간 관련성이 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주 평균 60시간을 넘겨야 만성과로로 판단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과로에는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잦은 야간근무나 스트레스를 받는 작업환경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노동부가 고시 개정에 나선 이유다. 노동부는 고시 개정안에서 과로기준을 3단계로 확대했다. 현행대로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면 개인 질병이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다. 여기에 발병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0시간이 안 될 경우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으면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가중 요인에는 교대·휴일근무, 한랭·온도변화·소음에 노출되는 유해 작업환경 근무, 육체강도가 높은 업무, 외국 출장, 정신적 긴장을 수반하는 업무를 포함했다. 야간근무(밤 10시∼오전 6시)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큰 점을 고려해 업무시간을 산출할 때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한다.

과로의 질적 요소를 반영한 점에서 고시 개정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노동시간 기준을 그대로 두면서 사각지대를 메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개정안에 포함된 '주당 60시간' 기준은 근거가 없는 임의적 수치"라며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매주 8시간이나 위반한 위법한 근무지시와 근로제공이 12주 동안 계속되는 경우에만 업무와 발병 관련성이 강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발병 전 12주 이내 과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장기간 만성과로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구체적인 판단지표가 없다"며 "노동부의 기계적 고시를 적용할 경우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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