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상판결 : 대법원 2017.12.13. 선고 2016다243078 판결


1. 들어가며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형태는 24시간 맞교대가 일반적이다. 주당 84시간 근로에 해당하는 장시간 노동이다. 다만 근무일 중 ‘무급휴게시간’이 6시간가량 포함돼 있다.

지금껏 경비원의 근로현실에서 무급휴게시간은 ‘휴게’가 아닌 ‘무급’에만 의미가 있었다. ‘근로자 보호 및 업무능률 향상’이라는 휴게시간의 취지와 무관하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을 회피하고자 명목상 휴게시간이 늘어 왔다. 입주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해야 하므로, 형식적인 휴게시간을 두되 실질적으로는 감시 업무를 지속하도록 지시해 온 것이다.

이미 2006년에 이러한 지시에 따른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의 휴게시간 근로 여부가 다투어진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현실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 등이라 해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이는 근로시간(대법원 2006.11.23. 선고 2006다41990 판결)”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 아파트 현장에서 경비원의 휴게시간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법적대응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경비원이 많지 않고, 법리적으로는 위 판례의 적용 방식에 관해 정립되지 않은 부분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2. 2006년 판례 법리의 올바른 적용

2006년 판례는 간명한 문장을 제시했다.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 일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문장 같지만, 전단과 후단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됐음”을 인정하려면 사용자의 적극적인 의지를 살펴야 하는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반면 “실질적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음”은 느슨하게 봐도 인정 가능하다.

관련해서 대법원은 1992년 판결에서는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또한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이라는 엄격한 해석을 강조했다(대법원 1992.4.14. 선고 91다20548 판결). 강행법규로서 근로기준법이 휴게시간을 엄격히 규정해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현실적으로 봐도 사용종속관계인 근로관계에서는 사용자가 자신의 지휘·감독으로부터 근로자를 “완전히 해방”시킬 때 비로소 휴게시간 보장이 가능하다. 아파트 경비원과 같이 다수의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업무의 경우에는 민원인들이 근로자의 휴게시간을 인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휴게시간이 “보장”될 수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근로계약서에만 휴게시간을 표기하고 입주민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알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야간휴게시간의 휴식에 대한 입주민들의 민원을 근로자에 대한 업무평가사항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보더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됐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2006년 판례 법리의 올바른 적용 방식은 휴게시간 보장 여부와 실질적 지휘·감독 존부를 고루 살펴 엄격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1심과 2심은 휴게시간 보장 여부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오직 ‘실질적인 지휘·감독’에만 심리를 집중했다. 2심까지 이에 관해 제출된 주요 증거들은 아래와 같다.

- 피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야간휴게시간에 경비실 내 조명을 켜 두고 의자에 앉아 가면상태를 취할 것, 급한 일 발생할시 즉각 반응할 것”을 지시한 문서
- “심야시간 취침행위 근절”이라 기재된 경비일지
- 경비실 내 조명을 끄고 취침하는 경비원들에 대해 입주민들의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실
- 이 같은 입주민 민원은 ‘근무평가사유’로서 경비원 재계약 여부에 영향을 준다고 규정한 취업규칙
- 피고의 지시로 이뤄진 심야 순찰업무는 매번 정해진 시간에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나머지 휴게시간의 자유로운 이용이 방해된 사실
- 야간 순찰시 경비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경비원이 가면을 하는지 관찰해 보고했다는 경비 조장의 진술

원심은 위 증거만으로는 “실질적인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가령 야간휴게시간에 가면상태로 대기를 지시한 것은 “긴급 상황에 불가피하게 근로에 착수해야 하는 경비원 고유의 근무형태에 기인한 것”일 뿐, 이를 실질적인 지휘·감독의 증거로 보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질적인 지휘·감독 여부에만 집중한다면, 특히 “실질적”이라는 표현에 집중할수록 휴게시간은 느슨하게 평가되고 근로시간이라 보기 어렵게 된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위 증거들만으로도 실질적인 지휘·감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야간휴게시간에 가면상태로 대기하도록 지시한 사실은 “휴식·휴게시간이 아닌 대기시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동일한 증거를 정반대로 해석한 이유는 위 2006년 판례 법리의 후단만큼 전단에 대해서도 동등한 무게를 두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상판결은 실질적 지휘·감독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뒤이어 “피고가 원고들을 포함한 경비원들에게 휴게장소를 제공했는지, 휴게장소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했는지”를 중요하게 다뤘다. “지하실은 피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방공호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휴식에 적당한 장소가 아닌 점, 지하실 침대 이용자에 대해 근무기강 불량을 지적한 사실” 등을 근거로 “피고가 경비원들에게 휴게장소를 제공하거나 휴게장소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이 사건 소송이 제기되던 시점에야 비로소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들에게 안내문을 통해 무급휴게시간을 고지하고, 휴게시간 푯말을 경비실에 부착하도록 조치하고, 경비원 휴게실을 설치해 이용하도록 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한 사실을 통해 “이전에는 입주민들에게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상판결은 실질적 지휘·감독 여부와 더불어 “사용자의 휴게시간 보장 노력 여부”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2006년 판례가 제시한 법리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기준을 정립한 것으로, 열악한 지위의 근로자인 아파트 경비원들이 휴게시간을 자유로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판례로 분명히 했다.

4. 나가며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 다수의 근로현장에서 휴게시간 보장 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휴게시간 인정을 위해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러할 때 명목상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꼼수가 중단될 수 있으며, 우리 사회는 장시간 노동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