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 영화평론가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아버지를 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됐고, 지난 9월에 개봉됐다.

2009년 쌍용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2천646명을 정리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였다. 77일간의 옥쇄파업이 무자비한 경찰력으로 강제 진압됐고, 94명의 노동자가 구속됐다.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16억7천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29명이나 되는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처럼, 해고가 당사자와 가족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해고자들이 7년 동안 선거전·법정투쟁·굴뚝농성 등을 이어 간 결과 2015년 12월에 드디어 협상이 이뤄졌다. 회사는 단계적 복직을 약속하며, 해고자의 22%만 복직시켰다. 추가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130명의 해고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12월1일 해고자들은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기 위한 원정투쟁에 나섰다.

1. 해고자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쌍용차 사태

<안녕 히어로>는 쌍용차 해고 사태를 겪은 가정 안으로 카메라를 비춘다. 갓 중학생이 된 현우가 아빠의 투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하는지 담기 위함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위원장인 김정운은 애초에 해고자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다. 해고자 명단에 든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파업을 두고 분열했다. 김정운은 해고자들과 함께 살자며 파업에 나섰다. 파업이 끝난 뒤 김정운은 파업주도를 이유로 해고됐고, 1년간 투옥됐다.

당시 현우는 초등학생이었다. 엄마와 함께 촛불을 들고 파업집회에 갔던 일, 삼촌들이 먹을 것을 사 줬던 일, 아빠가 연설하는 것을 들었던 일 등 파편적인 기억들만 있을 뿐,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빠가 구속된 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현우는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고, 놀러 가지도 않은 채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어린 현우의 마음에도 그늘이 드리운 것이다. 유난히 놀아 주기 좋아했던 아빠가 하루아침에 감옥에 간 것을 현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아빠 대신 돈벌이에 나선 엄마를 보는 것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이 앞섰다. 이후 현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특별한 시선으로 보진 않을지 예민하게 의식한다.

카메라는 하필이면 수원지검에서 열린 ‘사랑의 교복 나누기’ 행사에 참석해 검찰청과 구치소를 견학하는 현우의 착잡한 표정을 담는다. 안내자가 ‘죄 지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소개하는 이곳에, 아빠는 왜 1년이나 갇혀 있었던 걸까.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까만색으로 염색한 현우를 보고 아빠가 한소리를 한다. “야. 반항을 할 땐 해야 되는 거야. 내가 너 그렇게 안 키웠는데.” 현우의 염색에서 지레 순응하려는 제스처를 읽은 아빠는 속상함을 드러낸다.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빠 직업란과 장래희망란을 채우면서 부자의 의견이 엇갈린다. 아빠 직업을 뭐라고 쓰는 것이 좋을까. 해고자?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부모가 원하는 현우의 장래희망란’에 사회운동가를 쓰려는 아빠와 ‘본인이 원하는 장래희망란’에 회사원을 쓰는 현우. 정말로 원하는 것이 평범한 회사원이냐는 반문에 현우는 “일단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적고 싶다”고 답한다.

2. 노동자를 향한 세간의 시선을 내면화한 현우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선전전으로 활용하기 위해 김득중 지부장이 후보로 출마했다. 현우는 만약 아빠가 출마했으면 싫었을 거라고 말한다. 국회의원은 높은 자리니까 분명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왜 이리 소심한 걸까 싶지만 이해는 간다. 현우 친구들은 “노동자로 선수교체”라고 쓰인 김득중 후보 포스터를 보고 키득거린다. 아이들은 학벌이 좋은 후보, 자신과 같은 중학교를 나온 후보, 박근혜와 가깝다는 후보 등을 긍정적으로 말한다. 현우도 노동자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며 몸으로 때우는 존재’로 인식한다. 아빠 같은 노동자보다는 다른 직업이나 회장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현우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고, 적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도덕적으로는 아빠가 옳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현우. 선거 결과를 본 현우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드러낸다. 아빠가 계속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는데도 계속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현우의 체념 속에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긍지나 저항의식을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깊은 패배의식과 세상에 대한 냉소가 가득하다.

현우의 인식은 아버지를 향한 세간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해고자 두 명이 한겨울에 70미터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하자, 악성 댓글이 달린다. 현우는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렵다. 자신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계속 싸우는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마시면 용기가 나는 박카스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마시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용기 없음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살아야 하는 삶을 거부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우 생각도 조금씩 자라난다. 긴 복직투쟁을 거쳐 2016년 2월 마침내 아빠가 복직됐을 때, 현우는 “아빠가 영웅처럼 느껴진다. 같은 상황에서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조금은 달라진 뉘앙스의 말을 들려준다.

3. 더 많은 ‘현우’들을 향한 귀가 필요하다 

영화는 약 3년간 현우를 비춘다. 극적인 요소도 없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아들에게 기대할 법한 대견하고 희망찬 모습도 없다. 오히려 세간의 공격에 움츠러들고,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내면화한 소년의 소심한 토로가 이어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지점에 영화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별다른 가공 없이, 쌍용차 사태가 해고자 가족에게 드리운 그늘을 정확히 보여 준다. 가정해체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비교적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가정 안에도, 우울이 깊게 드리워져 있으며 특히 다음 세대가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음을 정직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는 비단 쌍용차 해고자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기 당시 내상을 입은 가족의 자녀들이 경쟁사회 논리를 내면화한 채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성인으로 자라난 것을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을 굳이 ‘IMF 키즈’로 부르지 않더라도,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열린 귀’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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