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아침에 문득 생각난 노래, 길을 걷다가 들려온 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린 경험이 있다. 노래 전곡이 아닌 어느 한 부분만 내내 입을 맴돈다.

노래와 비슷하게 특정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전체 문장이 아닌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최근에 머물고 있는 단어는 ‘값’이다.

순우리말인 ‘값’은 사전적인 의미로 ‘가격’의 뜻을 지니기도 하고 ‘가치’라는 의미를 띠기도 한다. 수학에서는 어떤 수를 대입해 계산했을 때 얻어지는 수치를 말한다.

흔히 스포츠기사에서 어느 선수의 연봉에 비례한 성적을 이야기할 때 ‘몸값’이라고 표현한다. 이때의 값은 ‘가격’이다.

수많은 ‘값’의 의미 가운데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가치’로서의 값이다. 사물이건 사물이 아니건 제값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실현했다는 뜻이다.

예컨대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이 그러하다.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임에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을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주 40시간 근무가 도입된 지 13년이 지난 지금 52시간 노동과 68시간 노동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노동시간 제도를 담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노동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제값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차별도 두어서는 안 되며, 법으로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 역시 제값을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노동자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시키지 못하는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이라 부를 수 없다.

출범한 지 7개월이 넘어선 문재인 정부도 국회를 좇아 구시대의 논리인 ‘경제를 생각해서’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시간과 돈을 희생양으로 삼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중소기업 사용자와 만찬간담회를 갖고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 등을 포함시키는 데 호응을 보냈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대한상의를 만나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과 중복할증에 대해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변화를 감지한 여당도 슬금슬금 ‘오른쪽’으로 대오를 이동하는 듯 보이고 이미 첨병을 자처한 환노위 의원도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읽어서일까.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인 경총은 진지한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는 대통령의 말에 납작 엎드려 있던 경총의 부회장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기준점이다. 법을 개정하려고 하면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촛불혁명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표방하며,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 그리고 결과의 정의로움을 지향하는 정부가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것이다.

PS. 1 : 이 와중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법 개정은 조용히 뒤로 밀려났다. 올해 일어난 버스 등 대형사고 속에서 지난여름 정부는 ‘사업용 차량 졸음운전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하루 평균 17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운수노동자를 비롯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상한선 없이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운수업 등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리당략이 먼저인 국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노동자의 시간·임금과 함께 소위 ‘패키지’로 묶어 협상테이블에 올려놨다. 결국 정부는 거짓말쟁이가 됐고, 국회는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을 하고 있다.

PS. 2 : 배우 정우성은 KBS뉴스에 출연해 “근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KBS 정상화”라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된 뉴스에는 ‘얼굴값 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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