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한겨레신문이 21일자 사회면(12면)에 <왜 서울 여성 가구주는 ‘월세 살이’가 많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좀 과한 말 같지만 정답은 ‘기자들 때문’이다.

기사는 서울시와 서울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2017 성인지 통계 :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을 인용했다. 서울에 사는 여성 가구주의 주거형태는 월세가 43.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해 남성에 비해 자가 소유 비율이 월등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서울 여성이 남성보다 주거조건이 열악한 이유를 여성 가구주의 많은 숫자가 미혼 또는 비혼 때문으로 추론했다.

같은 서울 여성이라도 나이에 따라 주거형태가 달랐다. 20~50대는 월세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60대 이상은 자가 비율이 높았다. 비혼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20~50대의 불안한 주거형태는 그들의 낮은 임금과 불리한 직업환경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20대 청년일자리, 특히 대졸 청년과 노령층 빈곤에 집착하는 사이 비혼 중년 여성이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고졸 청년의 실업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데도 우리 언론은 대졸 청년에 지나치게 집중했다. 기자들이 모두 대졸인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언론에서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너무 많이 들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언론의 경로의존성 때문에 특정계층의 빈곤만 지나치게 조명됐다. 인구도 많고 투표율도 높은 노인은 정치권과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받았다.

언론이 양 극단에 집중하는 통에 진보나 보수를 망라한 역대 정부는 청년과 고령층을 위한 각종 일자리 정책과 복지제도를 갖추는 것에 상대적으로 충실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언론과 정부가 한쪽에 치우진 정책을 펴는 사이 중간 연령층, 특히 비혼 중년 여성은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반면 우리 언론은 30~40대 여성에게 소비를 주도하는 ‘골드미스’ ‘알파걸’이란 별명을 붙여 허상을 부추겼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9월 발표한 ‘서울 여성 비정규 노동자 지원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보고서는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40대 비혼 무자녀 여성을 새로운 빈곤층으로 발굴했다.

심층면접에 응한 40대 한 비혼 여성은 “며칠 전 박원순 시장이 취준생을 위해 장려금(청년수당)을 준다고 했다. 50대 이상 분들도 이러저러한 혜택이 있다. 그러나 저희처럼 사이에 낀 40대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40대라도 유자녀라면 육아와 관련한 혜택이 있지만 비혼 40대 여성은 아무런 혜택이 없는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고 했다.

조사 결과 30~40대 비혼 중년 여성노동자가 초단시간 시간제 일자리로 점차 내몰리는 데다, 의지할 배우자 소득도 없어 노년기엔 급속히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만혼과 비혼이 계속되면 향후 40대 비혼 여성 비정규직이 급증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도 높다.

심층조사에 응한 또 다른 40대 비혼 여성은 대학을 나와 입시학원에서 전일제 강사로 일하다가 40대가 되자 나이 때문에 눈치가 보여 떠나야 했다. 이후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 마을강사 교육을 받고 지역아동센터에서 1주에 2타임(4시간)씩 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그가 받는 돈은 월 30만원 정도다. 그는 방과후강사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경력단절여성을 우대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계속 밀려났다. 비혼 무자녀 중년 여성이 또 하나의 정책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2011년 한국여성학회지에 실린 ‘20~30대 비혼 여성의 고용불안 현실과 선택’이란 논문도 이런 비혼 여성 문제를 예견했다. 매일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가 학계 연구자보다 세상 보는 눈이 어두워서야 어떻게 기레기 소리를 면할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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