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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만 과로가 아니다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우리 주변에 한 주에 50시간, 심지어 6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아파트·건물에서 경비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24시간씩 격일로 일을 한다. 얼마 전 버스노동자들이 한 주에 80시간 넘는 노동시간으로 안전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에 놓인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택시노동자들, 늘 야근과 주말 특근이 일상화돼 있는 제조업 노동자들, 항상 부족한 인력에 밤늦은 퇴근이 잦은 많은 사무직 노동자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활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단위시간당 임금이 늘어 적정 노동시간을 일해도 생활임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정인력을 확보해 야근·특근이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공감이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만 과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시간은 과로 정도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다. 비교적 평가하기 쉬운 지표여서 그렇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늘지 않아도 단위시간에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 증가한다면, 해야 하는 일의 어려운 정도가 커진다면, 야간에 일해야 한다면, 주말에 일해야 한다면 동일한 시간을 일하더라도 과로에 이를 수 있다.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43% 이상 우울증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심혈관계질환 발병 위험이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동일한 노동시간이더라도 주말에 근무하는 횟수가 많다면 우울증 위험이 남자는 45%, 여자는 36% 증가한다. 신입직원들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나이가 많은 노동자는 젊었을 때와 똑같은 강도의 일을 하면 더 많은 체력적인 소모가 일어나고 더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조직문화가 경쟁적이고 성과 압박을 받는 일을 한다면 그런 일을 하는 노동자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고, 이 역시 과로가 될 수 있다.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훨씬 높은 피로를 느끼고 우울증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고되고 있다. 해고 위협을 느끼는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들은 심혈관계질환·우울증·자살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있다. 사업장에서 일상적인 폭력을 경험하는 노동자들은 소진(burnout)·우울증이 증가한다.

장시간 노동 말고 과로를 유발하는 이러한 질적인 특성은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정도 일 안 하고 월급 받을 수는 없지” 혹은 “누구나 그 정도는 힘들지”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노동이 힘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누구도 죽을 만큼 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죽을 만큼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우리를 과로에 이르게 하는 다양한 과로의 질적 요소를 찾아내서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죽을 만큼 일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나의 노동에서 주인이 돼야 한다.

김형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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