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또다시 더불어민주당사 단식농성이다. 지난 18일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한상균 위원장 등 구속노동자 석방,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정치수배 해제’ 등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 당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꼭 1년 전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로 박근혜 정권에 사망선고를 하고, 촛불광장에 서서 ‘이제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노동적폐는 바로잡을 수 있겠구나’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1년 후 우리는 여전히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농성을, 전교조의 농성을,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농성을 목도하고 있다.

10여년 전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의 열린우리당사(현 더불어민주당) 단식농성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 된다. ‘노동변호사’ 출신 노무현 후보는 ‘노동자에 대한 희망의 약속’을 내걸고,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노동계의 기대를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출범 후 4개월도 되지 않아 노무현 정부는 철도 파업과 전교조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투쟁을 탄압했고, 화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업무개시명령제를 입법했으며,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을 공표했다. 노무현 정부 첫해 8월에는 민주노총의 반발 속에 주 5일제를 도입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9월에는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며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악안을 입법예고했다.

2004년 9월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입법예고했을 때 그 실체가 비정규직 양산법임을 간파했지만 전비연이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는 정부의 거짓선전에 여론은 비정규직법에 우호적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정부를 길들이려는 파업” “노조 특혜 축소” 운운하며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있던 상황이라 민주노총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았다. 결국 민주노총은 십여 차례의 총파업을 조직하며 악법을 막아 내려 했지만, 2006년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은 관철됐다. 그 이후 10년, ‘개혁적’ 정부의 노동악법이 낳은 처참한 결과를 우리는 겪어 왔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사 단식농성에 들어가며 이영주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대한 구속·수배 지속, 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근로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가 ‘촛불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출범 7개월을 경과하며 보여 온 ‘촛불정신의 후퇴’를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문제라고 갈파했다. 게다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법외노조가 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또한 여전히 법적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리운전노조는 하나의 사업주에 전속되지 않은 조합원이 있다는, 노동법적 근거가 없는 이유로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초기 노동정책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모순지점은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노동시장 개혁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저항하지 않는 유순한 노동에 기반한 체제를 조금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자본의 반발을 제압할 실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실체도 모호한 ‘사회적 합의’라는 틀 안에서 노동을 압박해 자본과의 불공정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정치공학의 주안점이 놓인다. 그러나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구속·수배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가압류의 낙인이 찍히고,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가 하루아침에 부정되는 상황을 지속시키면서 위로부터 진행하는 어떠한 노동개혁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근기법 개악은 재계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한다’ ‘한상균 위원장은 보수진영의 반대가 거세니 어쩔 수 없이 사면이 어렵다’ ‘전교조·공무원노조는 어쩔 수 없이 대법원 판결 등을 기다려야 한다’ 등이 정부로부터 나오는 기류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 묻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적폐를 지속시키면서, 이보다 몇 곱절 어려운 ‘노동존중 사회’와 노동기본권 보장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u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