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직무급제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직무급제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같은 임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능력이나 숙련도와 무관하게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 문제를 개선할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직무급제하에서는 임금인상을 하지 않고, 성과급적 성격이 강하다고 인식되면서 노동계는 직무급제를 ‘악’으로 규정해 왔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공공노련이 19일 오후 한국노총에서 개최한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전문가들은 “직무급제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직무 간 임금격차 벌리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종

정동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직무급은 임금을 인상하지 않는 단일 임률만을 적용하고, 담당업무에 따른 임금차등만을 의미한다고 인식하는 것은 직무급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했다.

직무급이라 하더라도 노동자 능력·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도록 할 수 있고, 실제 직무급제를 도입한 외국에서도 그렇게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동관 부연구위원은 “직무가치에 따른 임금차등만 강조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 간의 임금격차는 적정한가'라는 질문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호봉제나 연공급제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부문 임금체계에서 직무에 따른 임금격차를 벌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동일노동가치 동일노동임금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호봉급적 직무급제 대안 가능”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위해 공공기관 직급에 업무를 반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공공기관 직급은 업무내용과 무관하게 설계돼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직급 내 임금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노동연구원이 최근 공공노련 소속 사업장인 한 공기업의 임금체계를 분석했는데 5급 직원 최고연봉이 8천200만원인 반면 최저연봉은 2천800만원에 불과했다. 업무 특성이 반영된 것도 아닌데 연봉이 5천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직급에 업무 특성을 반영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직급에 묶이도록 하자는 것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내놓은 방안이다. 같은 직급 안에서도 근속연수·업무능력·숙련도에 따라 임금이 오르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없어졌지만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며 “호봉제와 충돌하지 않는 호봉급적 직무급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무급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 중 하나는 정부가 성과급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밀어붙였다는 사실이다. 발제자들이 제시한 호봉급적 직무급제는 기획재정부 관계자 시각에서는 직무급제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직무급제=성과급제’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방증이다.

정동관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직무라는 단어를 성과주의 보상체계 확립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완화하는 수식어구로 활용했다”며 “직무급이 발달한 나라는 성과뿐 아니라 능력·경력까지 반영해 기본급을 정하는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각색돼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직무급제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혼동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공정한 임금체계 개편을 한 것이 아니라 임금삭감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며 “임금체계와 임금수준은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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