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성수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1. 지난 6월 말 어느 날 오전 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임금체불 상담이었다. 2개월 동안 월급이 지급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월급을 통장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입증은 쉬워 보였다. 통장을 확인해 보니 4·5월 임금이 입금된 적이 없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자고 하면서 다른 자료들을 살펴봤다. 그런데 임금명세서를 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매달 30만원이 기숙사 비용으로 공제되고 있었다. 이 노동자는 간이 컨테이너에서 동료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2. 지난 2월 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이 지침을 요약한 안내문을 배포했는데, 여기에는 사용자가 이주노동자의 동의서만 받으면 최대 통상임금의 20%까지 숙식비를 사전 공제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3.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한 A노동자는 쉽사리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실 임금명세서에 공제된 숙소 금액이 기재돼 있었고 공제 동의서를 별도로 쓰지 않았기에 수월하게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출석조사에서 근로감독관은 근로계약서에 노동자가 부담하기로 한 숙박비용을 언급하며 공제에 동의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여기에는 숙식을 제공하는지 여부와 누가 부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 근로계약서에 사용자가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노동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몇 차례 말다툼이 오가고 나서야 근로감독관은 이 부분은 노동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지 공제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A노동자는 우여곡절 끝에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4. 노동부가 발표한 지침의 사전공제는 위법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침은 사전에 공제하고 싶으면 자국어로 된 노동자의 동의서만 받아 내라고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42조1항은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또는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사전공제가 법령 또는 단체협약(단체협약을 체결한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공제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노동부는 대법원 판례(2001다25184)를 근거로 위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판례는 “근로기준법 42조1항 본문에서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이른바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을 선언한 취지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을 금지해 근로자에게 임금 전액을 확실하게 지급받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그 보호를 도모하려는 데 있으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가지는 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할 것이지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자의 임금채권에 대해 상계하는 경우에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아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때에는 근로기준법 42조1항 본문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고, 다만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의 취지에 비춰 볼 때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는 판단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할 것이다”고 하고 있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 잡은 동의가 있는 경우에나 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5.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업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사업주는 주로 이름이나 “야” “얘” “저○끼” “씨○놈” 따위로 부른다. 출석조사에 나와서 이런다. 그들의 ‘가족 같은’ 대화를 듣고 있자면 이런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대단해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2015년 건설업 종사 외국인 근로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36.9%, 조롱이나 욕설을 들은 적 있다는 경우는 49.7%,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15.7%였다. 자유로운 의사에 맡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 지침이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니 노동부는 당장 이 지침을 폐기하고 숙소 실태에 대한 점검과 관리감독이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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