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파가 찾아온 지난 15일 오후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 입구는 “법외노조를 철회하라”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연차휴가를 내고 전국에서 올라온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조창익) 조합원 3천500여명(노조 추산)이 일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전국 교사결의대회를 열었다. 장갑·손난로·담요·깔개는 기본이고, 일부 조합원은 마스크와 귀마개·모자까지 준비했다. 한 조합원은 “추운 걸 각오하고 나와서 괜찮다”며 웃었다.

법외노조 철회와 성과급·교원평가 폐지를 주장하는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연가투쟁을 했다. 집단연가는 단체행동권이 없는 전교조가 하는 파업의 일종이다. 전교조는 6월부터 집회 전날인 14일까지 고용노동부·교육부·청와대와 총 30여 차례의 공식·비공식 협의를 진행했다. 전교조는 “정부는 몇 가지 합의안을 제시해 왔지만 진전된 안은 없었다”고 밝혔다.

“법외노조 지금 당장 철회하라” 한목소리

“우리는 법외노조 철회 시기가 바로 지금이고 당장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창익 위원장은 정부와의 협의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조창익 위원장은 “정부는 법외노조 철회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철회 시기는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며 “법외노조 연내 철회를 원칙으로,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한 전교조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는 성과급제를 유지하면서 차등비율을 완화한 뒤 제도개선을 위한 협의체 운영방안을 제시했다”며 “교원평가 폐지 요구에는 학교평가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새 정부가 노동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탄압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연말까지 법외노조를 철회할 것을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촉구한다”고 외쳤다. 조합원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제자들의 응원도 이어졌다.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원주행동하는양심’ 이다슬양은 “교사도 노동자다”며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것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국가에 복종해야 할 기계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발언 중간에는 콜트콜텍지회 해고노동자로 구성된 ‘콜밴’이 나와 공연을 펼쳤다. 멤버 3명이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고 젬베를 두드리며 노래하자 피켓들이 좌우로 춤을 췄다. 공연이 끝나자 조합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앙코르’를 외쳤다.

이날로 10일째 단식 중이던 한 노조간부는 일어서서 집회를 지켜보다가 “어지럽다”며 앉아 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의 찬 기운이 올라와 조합원들의 몸을 얼렸다.

조합원들 “참석 못한 동료 교사 염원까지 대신 전할 것”

교사가 된 뒤 처음 연가를 썼다는 인천지역 교사 주아무개씨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걱정됐다”며 “수업을 책임질 테니 교사들의 염원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동료 교사들에 힘입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주씨는 “이 자리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함께 있는 것”이라며 “기필코 교사들의 바람인 교원평가·성과급을 폐지하고, 전교조 합법화로 동료 선생님들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 주겠다”고 외쳤다.

서울지역 중학교 교사 박아무개씨는 “12월은 기말시험 성적처리와 3학년 진로지도, 학년 말 축제, 각종 체험학습으로 가장 바쁜 시기”라며 “그럼에도 이 추운 날 아이들을 놓고 나온 이유는 정부 출범 뒤 7개월이 지났는데도 교육적폐 청산 약속이 안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법외노조 조합원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교사 노조 조직원으로서 당당하게 서고 싶다”며 “정부는 이 겨울이 가기 전까지 법외노조 철회와 교원평가 폐지 약속을 지켜 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행사 과정에서 전교조와 경찰이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행사 시작 전 경찰이 일부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식 중이던 조합원 1명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참가자들은 오후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하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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