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균열일터>(The Fissured Workplace)라는 저술을 통해 ‘균열전략’이라고 불리는 현대사회 경영전략이 노동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균열전략은 기업이 첨단기술을 등에 업은 채 자신의 핵심역량만 남기고 나머지 기능들을 외부로 이전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책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첨단 대기업들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 모여 있던 경비와 청소부, 제품생산 및 관리 인력 등을 외부시장으로 떨쳐 낼 때마다 부가가치 상승을 경험했다. 이제는 더 많은 하위 단계 기업들까지 해당 기법을 따라하다 보니 조각조각 누더기가 된 노동시장에서 누가 내 보스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달라진 시대에 맞춰 ‘사용자성’에 해당하는 법적 판단을 새롭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균열전략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과 비용이 어느 일방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정치적 균형점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시민사회의 전략과 역할도 새롭게 제고돼야 한다.

책의 내용이 남 일 같지 않다. 우리나라도 지난 시기 외주화·하청화로 불리는 기업생태계 균열 과정을 경험했고 노동시장 분열과 이중화는 심화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서비스산업 프랜차이즈화, 플랫폼을 매개로 한 용역계약 일반화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기술발전은 노동시장 균열을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고 이 추세라면 우리 관념 속에 존재하는 ‘정규직’은 조만간 멸종위기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평가를 제기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진짜 사장 나와라" 등으로 상징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의 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적 어젠다로 격상되기보다는 개별 현안으로 격하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정치와 경제적 환경이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달라진 시대에서 ‘직접고용’ 내지는 ‘정규직화’로 불리는 요구가 처지가 복잡해진 개별 노동자들의 이해를 사회적으로 대변하기에는 협소화된 측면도 있다. 개별 사업장의 정규직화 투쟁이 ‘심정적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는 있어도 ‘내 일은 아니다’가 중론이 되는 현상의 원인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한 새 정부 출범 속에 벌어진 인천국제공항 갈등은 처참하다. 비정규직 투쟁 국면에서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자주 받아 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무임승차’라는 슬로건을 들고 대응에 나선 것은 당혹스럽다. '이기주의 대 무임승차'라는 정서적 갈등의 종착지는 파국이다. 가장 큰 대규모 사업장이자 대통령 직접 방문 등으로 사회적 주목도를 얻은 인천공항은 향후 공공부문 정규직화 논의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대로라면 내년까지 각 현장에서 아수라장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정 뻔히 알면서도 어젠다 던져 놓고 조정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정부에게도 좋은 소리 할 수 없다. 동을 떴으면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개별적인 갈등과 상처들이 한국 사회 전체를 뒤엎는 재앙으로 올라서기 전에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당면한 현안 처리도 있겠으나, 좀 더 거시적으로는 기업 균열이 노동 불평등 내지는 신분화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기 위한 사회적인 숙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멸종 위기 ‘좋은 일자리’로 소수를 편입시키는 것은 총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중화한 노동시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성채 밖의 모든 노동자 삶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대책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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