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교통방송(tbs)에서 7년 일한 객원 PD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2007년부터 교통방송 TV국에서 객원 PD로 일했다. 회의에 참석하고 아이템 정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정규직 PD와 같이 일했다. 교통방송은 지난해 5월 A씨의 프로그램을 폐지한다며 갑자기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서울지노위는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신청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교통방송을 운영하는 서울시가 중앙노동위 재심에 반발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누구보다 비정규직에 관심이 많고, 실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정규직 전환에 높은 성과를 낸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A씨를 방송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교통방송은 A씨의 업무위탁계약서에 기록된 보수가 월급이 아닌 방송 편당 수당이었고, 4대 보험 가입도 안 했고,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냈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더욱이 서울시는 A씨를 지휘·감독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러나 “계약서의 형식적 문구가 아니라 실제 근로관계를 봤을 때 A씨를 교통방송 정규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용역계약서 같은 걸 쓰고 일하는 방송산업의 수많은 프리랜서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그런 판결이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운영하는 교통방송에서 나온 게 아이러니하다. 이 방송사는 얼마 전에도 전 직원 중 극히 일부만 정규직이고 나머지 모두가 비정규직인 ‘비정규직 공장’인 게 알려져 여러 사람의 공분을 샀다.

A씨는 7년을 교통방송에서 일하면서 하루 최소 9시간30분을 일했고, 상급자 결재를 받아 프로그램 출연진을 정했고, 수시로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받는 등 사실상 교통방송 직원처럼 일했다.

서울시 말대로 A씨가 진짜 프리랜서라면, 그는 교통방송이 아닌 다른 회사와도 자유롭게 계약하고 그쪽 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 9시간30분을 한 직장에 묶인 사람 보고 프리랜서라고 우기는 건 좀 심했다. A씨의 승소 사실을 알린 건 지난 13일 헤럴드경제였다. 이처럼 보수적인 매체라도 기자가 뛰기 나름이다. 지난달 27일 조선일보 10면 톱에는 <‘바늘 학대’ 3년 만에 무죄 … 선생님은 식당일하며 버텼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2015년 1월 경기도 남양주시 한 어린이집 교사가 인터넷 여론몰이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사실이 뒤늦게 재조명됐다. 바늘학대 어린이집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달궜다. 어린이집 이름과 교사 실명까지 밝혀지고 폐쇄 서명운동도 일어났다. 의혹이 보도되자 해당 교사는 20년 경력을 포기하고 식당일을 하며 3년을 버틴 끝에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고 긴 악몽에서 깨어났다.

취재원으로 만난 한 보육교사는 이 기사를 보고 울었다고 했다. 정치적 의도만 없다면 조선일보도 이런 훌륭한 기사를 쓸 수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입을 빌린 조선일보의 평창올림픽 미국 불참설은 며칠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1면 톱기사로 <헤일리 “北 위협에 美 평창 참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 전면을 털어 해설기사까지 쏟아 냈다.

조선일보는 하루 뒤 9일에도 역시 1면에 <백악관도 “평창 참가 아직 미정”>이라고 썼다. 같은 날 <靑 요청에도 ‘평창 참가’ 확답 안한 美, 대체 무슨 일인가>라는 제목의 사설로 뒷문까지 받쳤다.

조선일보는 불과 며칠 뒤 12일자에 <“평창올림픽에 美선수단 전체 참가” 헤일리의 결자해지>라고 꼬리를 내렸다. 사나흘이면 진위가 드러날 걸 조선일보는 왜 이렇게 미국 불참쪽에 군불을 지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가 미워서다. 이쯤 되면 태양의 흑점이 폭발해도 문재인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할 판이다. 정치편향을 걷어 내고 기자들이 맘 편히 좋은 기사만 쓰는 조선일보를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인가.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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