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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자, 서로 손 내미는 사회를 위해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00년 어느 날 색연필 공장에 가서 검진을 했다. 수검자 대다수를 차지하던 중년 여성노동자들은 말했다. “오래 서서 일하기 때문에 다리가 아프고 핏줄이 보여요. 자다가 다리가 저려서 자주 깨기 때문에 피곤해요.” 하지만 필자는 직업의학 교과서에서도, 학술논문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의사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외국 인터넷서점에서 검색을 하다가 캐런 메싱의 책을 발견했다.

국내에는 <반쪽의 과학 : 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건강문제>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온 책이다. 일하는 여성과 남성의 건강 차이에 대해, 차이가 차별 근거가 될 때 전문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메싱의 책과 논문을 거의 다 찾아서 읽었다. 2007년 해외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메싱 교수에게 편지를 썼고, 필자가 영어로 쓴 논문을 첨부했다. 그 논문의 제목을 번역하면 <말하지 않는 이야기 : 한국 여성노동자의 건강>이다. 필자는 퀘벡대학의 신바이오스(CINBIOSE)에서 메싱 교수와 함께 연구년을 보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2017년 11월 메싱이 쓴 새 책 번역판 첫 장을 넘길 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제목은 <보이지 않은 고통>(사진·동녘·캐런 메싱 지음·김인아 외 옮김). 무려 140편이 넘는 학술논문을 통해 노동자 건강에 대해 이야기해 온 메싱 교수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연구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떻게 자신을 아프게 하는지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니들이 자녀가 깨어 있는 시간에 그들을 돌보도록 교대근무 일정을 바꾸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운송회사를 보면서 염증을 느꼈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냉정한 과학논문만을 쓸 수 없었고 저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연구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아마 한국 독자들은 직업보건 전문가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없앨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이 책은 대규모 제조업 남성노동자들의 전통적인 직업병뿐 아니라 소규모 서비스업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새로운 유해인자로 인한 건강문제에 관심을 촉구한다. 직업병 방사선에 노출되는 병원노동자, 단순 반복작업을 하는 청소노동자, 서서 일하는 판매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메싱과 동료 과학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문제해결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비숙련 저임금 노동으로 치부되는 요식업 종사자의 노동이 사실은 두뇌를 총동원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들쭉날쭉한 근무일정으로 일과 삶의 조화가 파괴되는 불행을, 교사 일을 숫자로 측정했을 때 교사 노동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했던 노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노동자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과학자들이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관심과 지원이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필요에 집중하는 직업보건 연구를 북돋는 것은 결국 대중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 독자들에게 이 외국 과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직업병을 직업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노동자들은 자신이 아픈 이유를 입증해야 할 책임까지 지고 있다. 사회보장이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 산재인정은 한 노동자의 생명이, 한 노동자 가족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 됐다. 노동자들은 과학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손을 내밀고, 과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김현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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