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공정한 임금의 원칙으로 진보진영에서 일반적으로 여겨진다. 노동운동은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 차별임금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다. 최근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아예 헌법에 넣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개념에 비판적이다. 임금에 공정성 같은 원칙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노동운동이 임금에 대해 가져야 할 관점은 차이의 공정성이 아니라 격차를 줄이는 평등성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이론적으로나 정세 상황으로나 노동자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먼저 이론적으로 보자. 자본주의에서는 질이 다른 상품들이 시장가격을 통해 양적 가치로 비교된다. 스마트폰과 사과가 시장에서 서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은 두 상품의 가치가 가격으로 평가돼서다. 만약 스마트폰이 100만원이고 사과가 1천원이라면, 스마트폰 한 개는 사과 1천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과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은 직접적 비교가 불가능한 전혀 다른 성격의 노동이지만 두 노동의 가치는 노동시장에서의 가격, 즉 임금으로 비교할 수 있다. 만약 자동차를 조립하는 노동이 시간당 1만5천원이고,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이 7천500원이라면, 전자가 후자보다 두 배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의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상적으로 작동하면 동일한 임금은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표현하게 된다.

우리가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을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재의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개선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으로 노동조합과 호봉제를 많이 지적한다. 이들에 따르면 조직력으로 임금을 인상하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임금을 근속으로 결정하는 호봉제는 노동의 시장가격을 왜곡한다. 자유로운 수요-공급 시장거래가 아니라 힘이나 제도로 가격을 결정하니 가치와 가격이 같아질 수가 없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조합과 호봉제를 철폐하라는 요구와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 노동조합과 정규직 호봉제를 쟁취하는 것은 시장가격 왜곡을 심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상적으로 실현하는 상황은 월이나 연 단위로 일자리를 모두 경매에 부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된다. 경제학은 완벽한 정보가 주어진 경매시장을 가장 이상적 시장으로 간주한다. 기업과 정부가 2천만개의 일자리를 직무분석해서 그 일자리에 필요한 지적·육체적 능력을 공개하고 최저가 임금입찰에 부친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경쟁하면서 결국 노동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실제 발생하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임금은 대부분 크게 하락할 것이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직무급제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전제한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업무 성질에 따라 5개 직무그룹으로 나누고, 각 직무그룹을 6단계 정도 숙련등급으로 나눌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가장 낮은 직무는 아무런 준비 없이 바로 업무수행이 가능한 일자리고, 가장 높은 직무는 중급기술자격이 필요한 일자리다. 가장 낮은 가치의 노동을 하는 일자리에는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런 직무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현실에서 실제 직무가치는 일자리 경매를 이용해 정할 수는 없다. 보통 관리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상식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직무평가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 노동의 가격을 정할 도리는 ‘상식’이나 ‘관행’ 말고는 딱히 없다. 육체노동으로 불리는 일들에는 낮은 가치가, 지식노동으로 불리는 일들에는 높은 가치가 주어진다. 돌봄 같은 여성이 하는 일에는 낮은 가치가, 배관수리 같은 남성이 하는 일에는 높은 가치가 주어진다. 관리자에 의해 이뤄지는 직무평가는 실상은 현재의 사회적 격차를 일반화·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설적이지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교사나 공공기관 정규직 일부가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정당화할 때 사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격증이나 공채시험이 우월적 가치의 노동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다른 가치 노동에 동일임금을 적용하는 역차별이다. 만약 자격증이나 공공기관 공채 일자리가 부동산 시장 같은 희소한 상품이라면, 그것들도 부동산처럼 임대수입을 발생시키는 가치 있는 자산으로 취급될 수 있다. 완벽한 시장이 해결책이라고 전제하는 한, 이들의 주장도 일정 부분 맞는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노동조합이 ‘시장의 공정성’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 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논리적 궁지에 빠지게 된다. 노동조합은 오히려 시장 공정성이 아니라 ‘시민적 공정성’을 전제로 평등주의를 임금정책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동일가치 여부와 무관하게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을 구체적 목표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임금의 조건은 시장의 동일가치가 아니라 시민적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연대임금이어야 한다. 공동체 분업 속에서 최소 임금과 최대 임금 격차는 제한돼야 하며, 임금체계도 어떤 형태로 임금을 받느냐보다는 격차 축소를 명확한 목표로 세운 뒤 나머지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이 될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체계가 내년 초부터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호봉제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해 보겠다는 정부 계획도 엿볼 수 있다. 노동운동이 시장주의적 임금 결정방식을 논리적 근거로 삼는 한, 이 싸움에서 노동운동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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