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때이른 위기를 맞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도처에서 날 선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노사자율 미명 아래 뒷짐 지고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할 정도로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 만큼 이런 결과는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어느 일방만을 탓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소모적인 교착상태가 길어지고 있는 지금, 다시 원점에서 되짚어 봐야 한다. 교육부문 정규직화 실패처럼 시행착오가 되풀이된다면 돌이키기 어렵다.

정부가 확고한 정책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라는 대원칙이 흔들리면 끝장이다. 일자리 질보다 양에 치우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핵심실세 경제부처의 안이한 관료적 사고로는 양질의 정규직화 모델 실현은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의 무기계약직 전환 또는 자회사 전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될 것이다. 한국 사회 불평등 양극화 해소의 마중물로 주목받고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언 발에 오줌 누기로 그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난제인 만큼 정부가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일선 기관들의 동요와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제어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연말이 코앞이라 촉급하다.

분명히 해 둬야 할 것이 있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비정규직과도 다르긴 하지만 정규직은 아니다. 차별시정 권한마저 빼앗긴 무력한 의사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수탁으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수행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기계약직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와 흡사한 처지였다. 정규직의 60%에 불과한 저임금과 각종 차별이 지속되고 있고, 특히 권한과 책임이 없는 신분 격차도 여전했다. 무기계약직이 도입된 2007년만 해도 일부 고용안정 효과가 주목받았으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무기계약직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전락했다. 서울시가 무기계약직 정규직화 계획을 내놨듯이 중앙정부도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을 해소할 진전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로드맵을 세밀하게 재정립한 후 추진해야 한다.

제대로 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2단계 추진이 불가피하다. 꽤 많은 수의 무기계약직이 현존하고 당분간은 무기계약직 형태로 낮은 수준의 정규직화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비정규직이 1단계로 원청의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을 거쳐 2단계로 진성정규직이 되는 방식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2단계 대책이 미흡해 혼란을 자초했다. 무기계약직과 기존 정규직을 직무체계·임금체계·승진체계 등 인사체계에서 통합해 완성도 높은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1단계 수준에 머무르면서 논란이 커졌다.

정규직노조 책임도 무겁다. 이익단체이기도 한 노조 특성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다. "기회의 평등은 YES, 결과의 평등은 NO"라니. 너무 나갔다. 노조의 첫 번째 권한이자 책무가 임금인상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하후상박을 통해 동질적인 요구를 형성한 노동자들이 단결해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 노조의 고유한 사회적 역할 아니던가. 역주행을 멈춰야 한다.

교육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좌초된 배경에 연대책무를 저버린 전교조의 그림자가 짙다.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노조 반발로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난항에 빠져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 후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린 파리바게뜨에서도 정규직노조의 반대가 장벽이 되고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정규직노조의 비토 파워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형국이다. 십수 년 일해 온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장 스펙이 시험으로 검증될 자격요건보다 못한가. 무한경쟁을 내면화한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노동현장의 민낯을 확인하는 매일이 씁쓸하다.

정부가 다시 원칙을 확인하고 세밀한 2단계 정규직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정규직의 항의가 정당한 면이 있으므로 사회적 협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과 정규직노조가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직접고용 정규직화 중심의 좋은 일자리 모델을 실현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한다. 지금이 성패의 기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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