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와 함께 정리해고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계속 엇갈리고 있다.

1998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엄격한 해석이 있는가 하면, 4가지 요건 가운데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이유'가 인정되면 나머지 요소들을 부차적 요소로 간주해 느슨하게 해석하는판결도 있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7부는 지난 98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된 이아무개씨 등전 조흥은행 직원 9명이 `비노조원들을 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해고한 것은부당하다'며 은행쪽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소송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노조원들과 따로 협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를무효로 볼 수는 없다”며 “해고 전 대규모 승진·채용을 실시하고 임금을인상했더라도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 98년 노사정 합의로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해고회피를 위한 상당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기준과 대상자 선정△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에 대한 사전통보 및 성실한 협의를 정리해고의4대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원 민사14부도 김아무개씨가 외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가산금을주며 희망퇴직을 유도하다가 거부자를 해고한 것은 상당한 해고회피 노력을 한것이고, 비노조원 해고 문제를 노조와 협의했더라도 하자는 없다”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1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정리해고 요건을 좀더 엄격히 적용해 정리해고를 무효화하는 판결들도잇따라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13부는 한빛은행 해고자 한아무개씨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노조와 이해관계가 상반된다고도 볼 수 있는 비노조원을 노조 합의로 해고한것은 부당하다”며 1심대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또 “하향배치 등의고용유지 노력을 하지 않은 채 희망퇴직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해고한 것은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도 전직 마사회 간부들이 낸 소송에서 지난해 8월“노조와 갈등관계를 빚기 쉬운 중·상급 관리직 노동자들을 노조 협의를 거쳐정리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정리해고를 두고 `갈짓자' 판결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근로기준법 조문자체가 애매한데다, 4가지 요건 충족 정도에 대한 판사들의 판단기준이 틀리기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원 내부에서도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정립이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이 법에 명시돼 있는데도 `전체적·종합적고려'라는 옛 판례를 따르는 판결이 잇따를 경우 자칫 근로기준법이 껍데기만 남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해고무효사건은 복직 여부와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이걸린 중요한 문제인데도 판사들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은 문제”라며“하루 빨리 분명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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